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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Nov 06. 2019

청춘의 염색

우리는 어떤 색으로 물들어 가는가


야, 내 친구 중에 김유진 이유진은 많은데 정 씨는 또 처음이다



2013년 OT, 그렇게 내 한 마디에 친해지게 된 대학 동기 단짝 정유진. 그 친구는 참 특별했다. 당시 아무도 하지 않았던 붉은 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만 봐도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어느 정도 붉은 머리였냐면 화재현장이 그 친구의 머리에서 발생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탈색 3번을 거치고, 주황색을 입히고 붉은색을 입혔다. 형광색 중에 형광 빨강도 있구나 생각했던 정도였다. 그래서 그 친구가 지나가면 동기들은 우스갯소리로 파이리가 지나간다고도 했다.


1학년 땐, 나랑 같은 언론영상학부를 전공하고 2학년이 되어 학과로 나누어질 땐 나는 영상학으로, 유진이는 언론홍보학을 택하며 다른 길을 갔다. 나는 PD가 되기로, 그 친구는 기자가 되기로 했다. 서로는 그렇게 방송국에서 보겠다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시 유진이는 학보사를 하며 기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교지를 내기 위해서 목요일이 되면 이틀 밤을 새 빨간 머리가 떡져서 수업을 들어오곤 했다. 매일이 피폐해져 넋 나간 얼굴로 들어오던 모습은 참 가관이었지만, 한편으론 열심히 자기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모습에 멋있어 보였다. 


"나 기자 그만할래"


그런데 3학년이 되고 유진이는 기자의 꿈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학보사도 3년이나 하며 명예퇴직까지 했으면서 갑자기 기자 꿈을 그만두냐며 나는 다그쳤다. 그랬더니 유진이는 버틴 거란다. 힘들어도 끝이 있으니 버텼다고 했다. 처음엔 기자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기자의식도 있었지만 점점 삶이 피폐해지니까 그것마저 흐려진다고 했다. 직업으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유진이는 빨간색에서 밝은 갈색으로 염색했다. 물론 아직도 밝은 머리였지만 유진이의 트레이드마크 빨간색이 없어졌다. 사실 그때까지는 유진이의 염색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빨간 물이야 계속해서 빠졌으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진이는 4학년 1학기까지 홍보로 전향해 홍보와 관련된 수업은 모조리 들었다. 매번 듣는 수업마다 A+이었다. 악착같은 녀석이었기 때문에 길을 바꿔도 열심히 했다. 겨울방학에는 외국 홍보 대행사에서 인턴도 하며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4학년 2학기가 될 때 유진이는 갑작스레 휴학을 했다. 왜 휴학을 해? 그냥 자신의 방향을 제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단다. 그러곤 토익학원 조교로 들어가 유진인 6개월 간 어학공부를 했다. 


다시 토익학원에서 만났을 때 유진인 밝은 갈색머리도 아닌 검정으로 물든 머리를 하고 있었다. 난 순간 울컥했다. 


야 넌 밝은 색이 어울리는데 어울리지도 않게 검은 머리냐? 

이제 검은색 할 때도 됐지 뭐.. 



유진이는 그저 내 말에 속상해했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땐 유진인 홍보 쪽으로 준비하지도 않았고 그저 공무원을 하고 싶단다. 홍보로 가서 잘 해낼 자신이 없고 그렇게 창의성도 있는 것 같지 않다며 말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악착같이 공부는 할 수 있을 거 같다며 공무원 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때 검은 머리를 하며 어학원에서 나오는 유진이의 모습은 나에겐 이유 모를 배신감이었다. 넌 진짜 밝은 머리가 어울렸는데, 아니 빨간 머리가 잘 어울렸는데, 그렇게 유진이는 정유진이 아니라 내 많은 친구 중 한 명인 김유진, 이유진이 되어 있었다. 



너만큼은 빨간 머리를 한 정유진이기를 바랐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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