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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랍 May 16. 2023

도망치는 자는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그런 꿈을 꾼 적 있다. 아무리 도망쳐도 무서운 괴물이 끝끝내 쫓아와 나를 붙잡는 꿈. 물론 괴물의 손이 내 발목에 닿는 순간 잠에서 깨곤 하지만 가끔은 왜 아무리 도망쳐도 결국 도망치던 존재에 잡히는지 궁금했다. 분명 나는 꿈에서 사력을 다해 뛰었는데, 어느 순간 나타난 그 무엇은 언제나 나를 따라잡았다. 

     

공포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항상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무서운 존재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뛰곤 한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어디선가 서서히 튀어나온 무서운 그 무엇에게 잡히곤 한다. 분명 무서운 존재는 뛰지도, 숨을 헐떡이지도 않는데, 항상 등장인물들은 비명을 지르며 잡히곤 했다.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보면서 어쩌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필사적으로 도망쳐도 서서히 다가오는 무언가에게 매번 붙잡히는 일은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때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은 도망치지 못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처절한 사랑을 한 사람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바로 오르페우스라 대답하고 싶다. 사랑하는 아내가 뱀에 물려 죽자 직접 저승으로 찾아가 하데스와 담판을 지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옥에서 다시 재회한 아내를 저승에서 꺼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땅에 도착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조건을 마지막 순간에 딱 한 발자국을 남겨두고 어겨 결국 아내를 놓친 사람이기도 하다.      


비극적인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는 아쉬움의 탄성이 나왔었다. “딱 한 걸음인데”라는 말을 했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다시 느낀 감상은 도망치는 일의 어려움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도망치더라도 결국 원하던 목표로 도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최선을 다해 도망쳤지만 실패한 사람으로 오르페우스가 떠오른 이유는 그의 신화가 하나의 거대한 도주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에겐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오르페우스는 아내와 함께 죽음이라는 사건에서 도망칠 방법을 고민하고 대담하게 실행한다. 하지만 결국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게 하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 왜냐면 마지막 순간에 정말 자신이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도망친 게 맞는지, 이제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그동안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봤기 때문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도망치는 사람이 나온다. 주인공 조엘은 자신의 전 연인 클레멘타인을 잊기 위해 한 회사를 찾는다. 조엘은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워준다는 회사의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고, 조금씩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다. 이에 기억 속으로 돌아간 조엘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다른 기억 속으로 도망간다. 하지만 결국 클레멘타인과의 모든 기억을 지우는 일에서 도망칠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에 클레멘타인과 몬탁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기억삭제 프로그램에 빨려 들어간다.     


이터널 선샤인 속 조엘과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는 모두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도망을 선택한다. 그러나 결국 두 인물의 도망은 실패한다. 두 사람의 도망이 실패한 건 이미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알고 모든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치며 뒤를 돌아보거나 도망치던 길 위에서 주저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발목을 잡힌다.      


죽음과 사랑은 모두 도망칠 수 없는 대상이다. 둘 다 모두 거짓말처럼 달려와 평온했던 일상을 뒤흔들고 지나간다. 도망칠 수 없는 그 무언가이지만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며 도망치고 싶어 했고, 도망쳤던 이들은 결국 공포영화 속 주인공처럼 조용히 다가온 존재들에게 붙잡힌다. 도망치는 존재는 언제나 느리다. 그렇기에 매번 붙잡히고 좌절한다.     


하지만 도망은 무의미하지 않다. 괴물처럼 나를 쫓는 존재에게서 도망치는 시간은 괴롭지만, 내가 무엇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지 마주하게 해준다. 언제나 도망치는 사람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방황은 명확하다. 그렇기에 붙잡히더라도 다음에 다시 도망칠 때 길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내가 걷는 길의 방향이 부디 맞는 방향이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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