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다시 피어나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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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신 한려수도의 자연환경 속에서, 우리 집안에는 글을 쓰는 이들이 많았다.
"글 집에서 글 난다'는 옛말처럼, 책은 늘 가까이 있었다. 묵직한 아버지의 서재는 내 놀이터였다.
동화책 한 권이 귀하던 시절, 나는 뜻도 모르는 『데미안』을 넘기고, 『백범일지』를 뽑아들며 의기를 일깨웠다. 학급문고를 모을 때, 아버지 책장에서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과 지드의 「좁은 문」을 내놓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부모님은 특별히 나를 위해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를 정기구독하도록 해주셨다.
학교 도서관에서는 책 도장을 모으듯 분류별 독서를 시도했다. 세계 명작 동화집에서 시작해서 한국전래동화, 위인전, 탐정. 추리소설까지, 방과 후 책 속에 파묻혀 시간을 잊곤 했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해 저무는 줄도 모르고 책에 빠져 있던 그 시절은, 지금 생각하면 신이 내게 주신 작가의 요람이었다.
국민학교 때는 동시, 일기, 독후감, 산문을 썼다. 중·고교 시절에는 소설, 시조, 수필, 영시를 습작했다. 웅변과 연설, 문학의 밤
학술발표, 논문, 설교… 나는 글로 말하고, 글로 놀고, 글로 살아왔다. 교내외 백일장과방송사 공모 당선은 내 꿈을 향한 걸음마이자 시작이었다.
한때는 노벨문학상을 꿈꾸며 국어교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신학을 택하며 그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교회학교 교재 집필, 번역과 편집, 간증집 정리 등으로 글은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남았다.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글은 늘 나와 함께였다.
그러다 남편의 소천은 내 삶을 갈라놓았다. 나는 말을 잃었고, 다시 글을 붙잡았다. 글은 기도의 언어가 되었고, 상실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글들은 서랍 속에 묻혀 있었다.
그때 만난 것이 브런치였다. 복잡한 절차 없이 내 글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글에 숨결을 더할 수도 있었다. 댓글 하나, 구독 하나. 작은 반응이 내 글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했다.
브런치는 시니어에게 열린 문이다. 시력이 약해도, 발걸음이 느려도, 경제력이 부족해도 괜찮다. 손끝만으로 세상과 연결된다. 세대와 문화를 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내 이야기를 남기려는 것이 아니다. 나처럼 글을 통해 삶을 지탱해 온 시니어들이, 각자의 지혜와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누도록 돕고 싶다. 신앙과 철학, 건강과 음식, 식물과 여행… 노년의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글로 길어 올려 함께 나누고 싶다.
브런치는 내게 또 다른 시작이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된다면, 나는 이미 꿈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내 글이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웃게 하고, 감사하게 하고, 본향을 향해 힘차게 걷게 한다면—
그것이 내가 브런치에서 이루고 싶은 마지막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