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도다(전도서 3:11)

by 김승희



1. 서문 — 관계의 역설과 인간의 연약함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더 어려워진다.

젊을 땐 상처를 받아도 다시 웃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오래 마음이 남는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토록 유연해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유리 같은 존재인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자기 사랑에 묶여 고통받는다.”


사랑은 본래 자유를 주는 일인데,

우리는 사랑을 통해 오히려 묶이고 다친다.

그래서 때로는 인간관계 속의 상처가

가장 깊은 신앙의 학교가 된다.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통해

우리 내면의 어둠을 비추신다.


2. 시절인연과 때의 신학


어느 날, 관계의 단절과 오해로 마음이 무너졌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줄이 귀를 모으게 했다.


“오고 감 때가 있으니,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

— 이찬원 〈시절인연〉


그 순간 깨달았다.

모든 만남과 헤어짐에는 **‘때’**가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를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하여

시간과 관계가 맞물릴 때 일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도다.” (전도서 3:5,11)


전도서의 ‘때’는 단순한 자연의 순환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질서다.

우리가 붙잡으려 해도 놓쳐야 하는 인연,

붙들지 않아도 다시 돌아오는 인연—

모두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의미를 얻는다.



3. 붙듦과 내려놓음의 변증법


사람은 본능적으로 관계를 붙든다.

사랑하면 잃기 싫고,

좋았던 시절은 다시 오길 바란다.

그러나 신앙은 역설을 가르친다.

“놓을 때 비로소 얻는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말했다.


“사람이 계획하나, 하나님이 경륜하신다.”

잠언 (16:9)


그의 말처럼,

내가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이뤄지지 않는다.

C.S. 루이스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썼다.


“사랑하려면 상처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랑은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위험을 감수할 때,

하나님은 그 상처의 틈으로 은혜를 흘려보내신다.


나는 그 사실을 늦게야 배웠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기 때문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장치였다.



4. 시절인연의 신학적 재해석


전도서는 말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1)


모든 만남에는 시작이 있고,

모든 이별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섭리 안에서

‘아름다움의 완성’을 향해 있었다.


히브리서 13:8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세상의 인연은 시절을 따라 흘러가지만,

하나님과의 인연은 영원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믿기보다 사랑해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박노해 사진전 2025,10.



5. 결론 — 때를 따라 아름답게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

그 관계의 기쁨과 상처, 떠남과 돌아옴이

모두 하나님의 ‘때’ 안에서 빚어진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서두르지 않으신다.

시간 속에서 기다리시며,

인연을 통해 우리를 다듬으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도다.”


그분의 시간 안에서는,

심지어 이별조차도 미완의 사랑이 아니라

완성으로 향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제는 흘러가는 인연 앞에서도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체념이 아니라 신뢰가 있다.

나의 시절은 지나가도,

하나님의 때는 영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