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요즘의 청춘을 보면 마음이 자주 저릿해집니다.
꿈꾸어도 다다르긴 더딘 세상,
사랑해도 계산이 앞서는 시대,
노력해도 빚이 먼저 쌓이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날마다 버티듯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고학력이라도 정규직 문턱을 넘지 못하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의 마음보다
그 가정의 형편을 먼저 염려합니다.
불안정한 일자리, 치솟는 전세금, 끊이지 않는 경쟁.
청춘은 여전히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시작선에 서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가진 것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도리어 그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형편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두 손 모아 올리며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이 시대의 아이들이 너무 일찍 상처받지 않게 하소서.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아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소서.”
요즘 청춘들은 눈물 대신 웃음을 연습하고,
두려움 속에서도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삽니다.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어른들은 압니다.
그래서 이제는 훈계보다 응원이,
지시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의 아들들,
한 아이는 일터를 잃고도 자신만의 일을 꾸려가려 애쓰고,
또 한 아이는 사랑을 지키려다 현실 앞에서 고민에 잠겨 있습니다.
그들의 흔들림이 곧 세상의 흔들림 같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청춘의 한가운데 계시다고.
낭떠러지 끝에서도 길을 내시는 분이라고.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와 ‘응원’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 어떤 유산보다 값진 축복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청춘들이여,
지금은 돌풍 속을 지나고 있겠지요.
그러나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뿌리를 내립니다.
실직이 두렵고, 사랑이 흔들리고,
내일이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그 모든 시간이 당신을 빚는 손길입니다.
우리의 청춘들이여,
지금은 돌풍 속에 서 있는 것 같아도
이 시절의 눈물과 고독이 언젠가 빛으로 변할 것입니다.
믿음이 깊은 만큼, 삶도 단단해질 것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여전히 정확합니다.
기다림 속에도 계획이 있고,
눈물 속에도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뒤에서 기도로 응원하고,
너희는 앞에서 삶으로 응답하거라.
비록 세대는 달라도 마음은 닿아 있습니다.
한 세대가 무너진 자리에서
다른 세대가 다시 피어납니다.
삶은 결국 사랑을 배우는 여정이고,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입니다.
세상은 차갑지만,
그대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살아내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오늘도 우리는 응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