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일기 #1
30대.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왔다.
독립선언!
독립을 하고 싶었지만 고민만 하면서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웠던 일을 해냈다.
집이 서울이었고, 직장도 서울이었기에 오히려 나갈 이유가 없었다.
직주근접. 내 첫 직장은 따릉세권이었다. 집에서 따릉이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 혹은 마음먹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기에 오히려 집을 얻어 따로 산다는 것이 이상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결혼 전까지 돈을 착실하게 모으라고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가고 싶었다.
회사와 집이 가깝다 보니 오히려 게을러지는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혼자 나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나는 약 1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해야 하는 지역으로 직장을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희한하게 나는 약 10개월 동안 열심히 출근하며 집을 나오지 못했다. 초반 3개월 정도는 아침에 책이나 칼럼을 읽으며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 사실 1시간 이내의 출근 시간은 나에게 집이라는 공간과 분리하는 워밍업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이후 4개월 정도는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빴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기도 했다. 회사, 요가원, 집인 세 가지 루틴이 나에게는 자연스럽기도 했고 말이다.
회사에 좀 적응하고 다시 나에게 집중하면서 다시 집을 나가야 한다 라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돌이켜 보면 예전부터 그러니까, 나에게 집중하고자 했을 그 시점부터 나는 완전한 독립을 갈망해 왔었던 것 같다.
나가길 갈망하면서도 나를 붙잡는 것들이 있었다. 이기적인 사람.. 집에서 지내는 것은 사실 엄청난 행운이자 마약이다. 부모님이 무한정으로 제공해 주는 복지 같은 마약. 내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무한정 제공되는 아침, 점심, 저녁 게다가 간식. 편안한 잠자리. 신경 쓰지 않아도 깨끗한 방과 화장실 그리고 나의 옷들. 사실 보이지 않지만 이미 누렸던 그 호화로운 것들이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곳은 천국이자 끊지 못하는 중독 같은 마약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고. 사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부모님의 도움이었지만 대학교 때 한 자취생활은 학업에 더불어 나를 투잡, 쓰리잡을 띄도록 만들고도 적금까지 남아돌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혼자서 척척 해내다가 집에 들어오면 편안함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마련이었다.
내가 나가지 못한 이유는 나에 대한 불신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돈을 모으고 싶은데, 서울에 나가면 다 돈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돈을 모을 수 있을까?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라는 마음. 나는 두려움에 잠식되어 있었다. 내 무의식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나에 대한 의심을 뒤로 한채 어쩌면 나가야 하는 이유가 명확한데도 불평만 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찌질하게도.
두번째 이야기는 <이제는 진짜 나가야만 해>
P.S 나는 왜 나가고 싶었나
01. 조용하게 있고 싶었다.
집에 오면 들리는 유튜브 혹은 티브이소리가 나에게는 듣기 힘든 소리가 되어 다가왔다. 나만의 시간을 조용하게 갖고 싶었다.
02. 걱정 섞인 잔소리지만 부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싶지 않았다.
대게 무언가를 한다고 했을 때, 걱정을 담은 말이 오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면 응원의 메시지 보다 할 수 없다는 말, 혹은 어떻게 하냐는 말 등 이미 잘못된 상황까지 만들어 나에게 전달하는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숨기고 무언가를 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새벽 일찍 나가거나 밤늦게 들어올 때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03. 다른 패턴
우리 가족은 어찌 보면 프리랜서 패턴이다. 직장인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자고, 자유롭게 일어나는. 하지만 나 홀로 직장인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고, 패턴이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밤낮이 바뀌어 있었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