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얻어온 냉방병은 일주일째예요.
병원도 다녀왔지만, 여전히 코찔찔이입니다.
몸 상태는 별로인데, 여름은 참 좋습니다.
늦도록 지지 않는 해,
짙푸른 초록 나무,
그리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
출근길 지하철 창밖으로 언뜻언뜻 스치는
한강의 윤슬도 빼놓을 수 없죠.
물론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그걸 온전히 보기란 쉽지 않지만요.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반짝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아침이죠.
사무실에 도착하면
창문을 엽니다.
지난밤의 공기를 밀어내고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레몬즙을 탄 컵에 투두둑 쏟아부어요.
냉방병엔 찬 건 피하라고 했지만,
레몬물 한 잔이 정신을 들게 하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대신 에어컨은 한참을 참고 나서 켭니다.
음악을 틀고
오늘의 할 일을 적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이걸 적어야 정리도 되고
일도 수월하거든요.
요즘은 메일부터 안 봐요.
대신 책부터 펼칩니다.
한 시간쯤 이 책, 저 책 보다가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으면
수첩에 옮겨 적습니다.
땀이 나기 시작하면
그제야 에어컨을 켭니다.
처음엔 빵빵하게 켰다가
25도에 맞춰요.
메일을 열고,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적당히 균형을 잡아봅니다.
출판사 일을 하다 보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늘 있어요.
효율은 잘 안 나고,
미루면 끝도 없고.
그래서 저는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할 일을
퐁당퐁당 섞어가며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빡빡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틈을 남겨두는 게 오히려 오래 할 수 있더라고요.
이게 제가 이 여름을
살아내는 방식입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이 하루들이
뭐가 되긴 되겠죠.
그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