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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도황리 Jun 20. 2024

그들도 나도 지구인

공자 사원에서(2)

물감물을 버리고 나오는데 노부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단정히 앉아 노부부가 탁자 위 써놓은 글자 하나를 가리켰다.

탁자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빨간 종이를 반듯하게 놓고, 붓을 들었다.

그제야 탁자 위에 놓인 샘플 글자들이 보였다. 빨간 종이 위에 금색 글자.

글자라기 보다 그림 같았다.

어떤 글은 읽는 것이 있고, 어떤 글은 보는 것이 있다.

탁자 위에 놓인 글자는 글자로 적힌 그림이었다.


여행지마다 마그네틱을 산다. 공자 사원에선 마그네틱 대신 이 글자 그림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가격이 얼만지 찾았다. 그런데 '무료'라고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공자 사원이라서 그런가? 훌륭한데 공짜라니. 조용히 노부부 뒤로 가서 줄을 섰다.


노부부가 글자를 받고 일본 말로 소곤거렸다. 하나도 알아들을 수없지만 대충 눈치로 보아 감탄하는 것 같았다. 노부부는 들어올 때 조용히 들어온 것처럼 나갈 때도 조용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글자를 적어주시던 아저씨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받고 싶은 글자는 많았지만(모두 좋은 말만 있어서) 한 장만 된다고 해서 평안(平安)이라는 글을 부탁드렸다.  

 

진지하면서 힘 있는 손의 움직임 따라 글자들이 탄생했다.

단아하지만, 힘이 들어갈 땐 힘이 들어가고, 힘을 뺄 곳은 힘을 뺀 글자. 아니 그림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것 같은 글자.

"쎄쎄니"

이 말은 작은 애가 정말 감사할 때 대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더라고 알려 준 말이다. 여행하는 내내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그날 처음으로 써먹었다. 더 말하고 싶지만 아는 말도 없고 그저 미소만 짓다가 스탬프가 생각나서 아는 단어를 조합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 please where is the stamp?"  

어리둥절하시더니 미소 지으시며

“English” 손으로 엑스표를 했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고 번체자로 스탬프 찍는 곳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적어서 보여드렸다.

그분은 따라오라며 손짓을 하셨다. 데려간 곳에 스탬프가 있었다. 그분이 스탬프를 가리키고는 밖에 다른 곳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아마도 스탬프 도장이 있는 곳을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쎄쎄니”라고 했더니 정말 말 그대로 활짝 웃으셨다. 그분의 순수한 웃음은 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한 번에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공자 사원을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기분이 확 달라졌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경험으로 아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길을 잘 모르지만,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들도 나도 이 지구에서 사는 지구인이라는 거. 그러니 더 이상 가슴 졸일 필요가 없었다.


단수이를 가기 위해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사고, MRT를 타러 가는 길에 야채 과일 가게 옆 밥집에 사람들 이 길게 줄 서있었다. 말로만 듣던 대만 100원 밥집. 마침 배도 고프고, 친절한 대만 사람들을 겪은 나는 현지인 뒤에 가서 조용히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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