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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운 Sep 14. 2024

구부러진 빛으로도

희도야, 희도야. 벌써 너가 아픈지 3년이 넘었다. 아직도 네가 새벽에 장문으로 혈액암에 걸렸다고 문자를 보낸 순간이 잊혀지질 않아. 늘 그랬듯이 장난 중에 하나인 줄 알았지. 그런데 조금 더 심한 장난 그런 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너한테 답장을 보내기 전에도 수십 번을 생각했었어. 정말이면 어떡하지. 정말이어도 아니라는 척 장난스럽게 답장을 할까. 나는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늘 그랬듯 장난치지 말라며 답을 했었잖아. 그게 너한테 조금은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오히려 우린 친했으니까 그런 퉁명스런 답이 우리가 조금은 덜 슬플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이 되었을까.

자주 생각해. 많이 바빴던 나였고,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이기에, 병문안 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때였지. 그게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지 않았을지 지금도 생각해.



너를 생각하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심지어 너가 아프기 훨씬 전부터 더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어. 너는 나에게 그런 친구거든.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내가 재수했기 때문에 대학 동기로서 만났었지. 1학년 때부터 수강신청 한답시고 게임하면서 밤새고, 과제와 시험 준비한다고 게임만 더 많이 하다가 밤새는 일도 허다 했어. 지나고 보면 정말 재미있고 행복한 순간들이더라.




노는 시간보다 공부와 걱정거리에만 시달리던 내가, 그렇게 걱정들을 내려놓고 편하게 웃고 재미있게 보낼 수 있던 시간들이 소중한 건 다 너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일거야.



그럼에도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도 너가 가장 아끼는 친구였던 건, 늘 자신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생각도 깊어서 언행도 늘 조심스럽고 바른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나보다 어리지만 내게 없는 삶들을 살아가는 너를 말없이 응원하면서 동경했었어.



근데, 그런 너가 어느날 뜬금없이 새벽에 암에 걸렸다고 하는거야. 그날 새벽부터 며칠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그때의 나도 첫 회사생활을 하면서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에 피폐해지면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거든.



오히려 내가 병에 걸렸다면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그런데, 왜 네가 아파야 했을까. 나보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는 너인데, 왜 너가 더 아파야만 했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인데, 왜 하필 너여야만 했을까. 수많은 질문이 온몸에 자라나 간질거려 잠을 못잤어.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너 대신 아팠어야 했다고. 못된 생각이지만, 그 정도로 넌 나한테 제일 좋은 친구니까.




수술을 하고, 오랫동안 입원을 하다가 퇴원한 널 처음 보았을 때, 집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 강한 항생제와 수많은 약들을 먹어도 생기는 부작용들이 너의 얼굴과 머리, 온몸을 괴롭히고 있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너의 모든 이야기를 다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뿐이라는 게 힘들었다. 밥을 사주고 싶어도 아무거나 먹으면 안되니까. 가장 많은 걸 해주고 싶은 너에게 가장 많은 것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에 며칠동안 온 세상이 흐렸어.



희도야, 3년이 지난 지금 재수술을 또 한지도 1년도 훌쩍 지난 지금, 너의 세상은 어때. 너의 하루는 어떠하니. 조금은 예전보다 나아져서 조금 더 많은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집 밖으로 더 많이 나갈 수도 있게 되었으니, 조금은 예전의 너를 다시 찾았을까.



내가 몇천 번을 너가 되어 보는 상상을 하고 꿈을 꾸어도, 나는 죽을 때까지 너의 힘듦과 아픔을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할거야. 그래도, 나는 내 나름대로 너의 고난과 역경을 나만의 방식으로 함께 하고 있어. 너에겐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기적이게도 너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죄를 조금 더 벗어나기 위한 핑계이거나 방법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너를 바쁘다는 핑계로 내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기도 해.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너에게 어떤 힘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너의 모습은 예전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지만, 근황을 듣고 집에 돌아와 며칠, 몇주 동안 먹구름 속에서 지낸 나였어.


그 누구보다 행복해야 하는 너인데, 왜 모질게도 세상은 너에게 여러가지 시련을 주고 있는 걸까.



나는 종교가 없어, 신에게 기대지 않지만, 한 때는 너를 위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던 때도 있었어. 가끔은, 신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 기도를 하면, 열렬히 무언가를 믿어보려고 하면, 거짓말처럼 너에게 기적이 일어날까. 기대를 너무 했던 것일까. 왜 여전히 너에게만 이런 힘든 것들이 쏟아지고 있는지. 괜히 세상과 보이지 않는 신에게 원망을 하곤 해.



그럼에도 힘든 상황 속에서도 너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열심히 살며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는 네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너보다 덜 아픈 내가, 매일 우울속에 빠져 있는 내가 역겹기도 했어. 웃기지. 타인의 고통으로 부터 나를 돌아보고 있다는 게.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일지도 몰라.



한편으로는 예전과 너가 한결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열심히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의지와 모습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 그런 의미에서 아직 너는 정말로 죽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매일 질문을 하고 있어.




희도야, 미안해. 너가 많이 아프면서, 사람들도 자주 만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너에게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았던 것이, 내게는 가시가 심장에서 자란 듯이 미안하고 아팠어. 많이 외로웠을까. 홀로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아픔과 현실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너에게 난 왜 간단한 안부 문자 한 통도 쉽게 전하지 못했을까.


매일 외로움에 싸우고 있는 내가, 왜 너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을까.



희도야, 산다는 건 무엇일까.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진짜 인생일까. 나도 많이 아픈 것 같아. 산다는 건 왜 이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걸까. 오로지 나는 나라는 유일한 존재로서 태어났기에, 그 누구와도 진정한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 진리인 걸까. 



잘 모르겠어, 희도야. 나는 나 나름대로 외롭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왜이렇게 찬바람은 시리고, 햇빛은 아픈지. 낮보다 밤이 더 따뜻한지. 나는 어쩌면 어딘가부터 대단히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부터 어둠속으로 나를 감추고 숨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해졌어. 스스로를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기도 해.




희도야, 희도야.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매번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데, 왜 한걸음 나아가면 두걸음씩 나에게서 사람들은 조금씩 멀어지는 걸까. 아니, 어쩌면 애초에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라.



나 뿐만 아니라 너와, 우리, 그들 모두가 각자의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기 바쁜 시대잖아. 자기 자신 하나를 건실하게 챙기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런 요즘이잖아.



머릿속으론 이해 하지만, 나, 사실 많이 쓸쓸하고 외롭다. 너가 옆에 자주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점점 나이는 드는데 줄어드는 건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인 것 같아.


언제부턴가 나의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을 한다는 게 누군가에겐 피해가 되지 않을까. 오히려 내 진실된 마음 때문에 더 멀어지는 건 아닐까. 두려움도 커지는 것 같아.



함께 하지만, 함께 하고 있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볼 때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인지 잘 모르겠어. 사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 희도, 너에게 난 괜찮은 사람이야? 아직, 나 그래도 좋은 사람인 거 맞지?


조그마한 별거 아닌 거에도 크게 마음이 동요되어서, 혼자 상처 받고 혼자 오랫동안 마음에 푸른 멍이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는 달라질 수 있을까.




가끔은 내가 커다란 세상이란 병원에, 다인실에 입원해 있다는 생각을 해. 내 몸 이곳 저곳에 남겨진 흉터들을 볼 때면 사실 어딘가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흉터보다도, 마음이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할까 희도야. 너는 마음이 아프면 어디로 가니.



내가 열심히 다가가고, 노력하면 세상도, 사람들도 내 진심만큼 나에게 다가와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애초에 나는 그들에게 소중하지 않아서, 내 말과 행동, 감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내가 고심한 끝에 보낸 연락에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발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여겨진다고 느낄 때. 나는 무성한 잡초속에 자란 어떤 또 하나의 잡초처럼 느껴져.



정말 미안해 희도야. 나조차도 외로운데, 너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이제는 더 이상 네가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너에게 걸어 갈게. 여전히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도, 찾아 갈게.


아주 희미한 빛이어도, 곧게 나아가지 못하는 구부러진 빛일지라도, 빛이 되어주고 싶어.



너와 함께라면, 이 쓸쓸하고 차가운 세상에서도 나는 너로 인해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을까. 나, 아파. 마음이 너무 아파. 나는 어디로 가야 명의를 만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




희도야, 삶이란 무엇일까. 정말 무소의 뿔처럼 홀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누군가와 함께 진심으로 곁에 있어준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일까. 



누구나 완벽한 좋은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있어. 그만큼 그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많이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



그럼에도,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거겠지, 희도야. 내가 다가가는 만큼, 더 멀어지는 것 같아도, 아니 애초에 내게 다가오지 않아도, 그런 상처를 견뎌내며 나아가야만 하는 거겠지.


사실, 많이 두려워 희도야. 너는 두렵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거 말이야. 내 마음은 무한하지 않아서 소중한 데, 꼭 누군가에게 간다는 건 한 조각씩 마음을 잘라 덜어내어 주는 것 같아서 아파.



그럴 때면, 구부러진 빛이 어디로 나아가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은 밤을 보내곤 해. 희도야. 희도야. 나는 너를 희도라고 부르곤 해. 왠지 알아? 너만큼은 나 대신 기쁜 길을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아니, 사실 나도 그런 길을 향해 걸어가고 싶어. 나도 다만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야.




나, 그래도 썩 괜찮은 사람인 거겠지. 희도야. 마음은 늘 맹목적인 기도 같아서, 믿음 뒤의 그림자는 외면한 채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고백을 한단다. 나의 고백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의 고백도, 모든 기도들도 구부러진 빛이 되어 별이 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빛은 빛이잖아. 우리도, 너도, 나도 빛이 될 수 있잖아.



희도야, 우리,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파야 한다면,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을 할 수 있는 행복이 찾아오면 좋겠어. 우리, 그래도 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잖아.



가끔 별이 드문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너와 내가 있을 별자리를 그려보곤 해. 오늘과 내일이 별자리가 달라지곤 하지만, 그러면 뭐 어때. 그래도 별이 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구부러진 빛으로도, 아주 작은 희미한 빛으로도, 우린 별이 될 수 있을거야. 나도 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게, 그래서 행복할 수 있게 더 살아볼거야.


그러니까 희도야, 희도야…희도야, 나의 희도야.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저기 저 곳에 별자리가 비었다.


꿈에서 별을 쏘러 가자. 잘 지내. 곧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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