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는 집

by 화운

다음 시험은 잘 보고 싶어

동네 작은 서점에 가서

손때 묻은 문제집을 산다

중고서적이라 문제마다 답이 찍혀 있고

그 아래 휘갈겨 쓴 풀이와 공식들


어쩌면 난해한 건 문제가 아닌

다른 것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문제집을 산 내가 문제라면


먼저 문제를 푼 사람은 이 많은 답을 찾기 위해

몇 개의 몽당연필을 쥐었을까

지우개는 아무리 작아도 없어지지 않고


해설지는 깨끗한 걸 보니 공부는 잘했나 보다

싶었지만 문제집엔 비가 많이 내려

우산 없이 비를 피하는 날이 잦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아낌없이 스스로 비를 내렸구나


문제마다 찍힌 답들을 피해

해설지를 자주 들여다본다

답은 명료한데 해설은 못 지킨 약속처럼 늘어지네


정답은 없고 해답은 있는 것이 괴로울 수 있다면

채점은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어


빼곡히 매겨진 나의 점수는 오차범위가 넓다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

이 문제집을 다 풀어낸 이는 좋은 대학을 갔을까


문제집을 연필로 콕콕 찌르고 괴롭히면

문이 열리는 구석이 있다

지우개를 다 쓰는 날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