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이름의 벽을 마주할 때

by 화운

"같이 하면 좋긴 한데 혹시 준호 씨가 불편해하실까 봐서요."


하나둘씩 시간의 층이 쌓여가고 어른이라는 이름에 맞춰 성장하면서 중요성을 체감하는 것은 '배려'다. 나에게 '배려'는 나의 주관과 가치관, 개성, 취향으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과 앎을 넘어 이해를 함으로써 내가 조금은 양보를 해도 괜찮아 상호 간에 좋은 거리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마치, 난로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뜨겁고 다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배려는 주는 사람은 물론 받는 사람에게 따뜻함을 준다. 주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하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온기가 생성되고 받는 사람은 그 온기 덕분에 양보함으로써 조금은 불편해질 수 있는 상황을 버림으로써 가벼워질 수 있어, 이에 더 한 온기로 답례를 한다. 진정한 어른은 배려를 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잘 배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으로 형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배려라는 이름의 벽을 우리는 가끔 마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배려'라는 이름으로, 그 내면과 배경에 있는 각자의 개성과 취향, 주관, 가치관이라는 것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위한 노력들의 엇나간 파편으로 인해 따뜻해야 할 배려가 아닌 서늘함을 마주하곤 한다. 항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 동등할 수는 없어, 한쪽이 더욱더 마음을 쏟는 경우가 빈번한 것처럼, 배려도 이 마음의 공간이 가지는 빈부격차와 틈새에서 서늘함이 새어 나오곤 한다.

예를 들어, 조금은 과감하고 솔직하게 친해지고 싶어 다가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점과 상대방이 불편함을 감추고 진실되지 않은 마음으로 응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서늘함을 느낀다.


서로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언행들이 때로는 더 좁혀질 수 있는 거리를 방치해두거나 더 멀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소통하면서 이러한 상황인지를 쉽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이 간극을 좁힌다는 것은 도전이자 큰 용기일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더욱 값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값지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충돌 후 맴도는 통증이 낫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배려라는 이름의 벽을 마주할 때면 조금은 더 용기를 가져보려 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미움받더라도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되돌릴 수 있는 여지는 있을 테니까. 배려라는 벽을 허물지는 않되 벽 위로 손을 흔들어 그 사람에게 솔직한 마음을 비추는 것, 그리고 이 손을 진실된 마음으로 마주 잡아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배려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