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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로잉 에브리 두 Mar 02. 2022

요즘 다이소 미술 재료

다이소 미술재료 퀄리티가 얼마나 좋은지 알고 계시나요?




“선생님! 저 오늘 독수리 그릴 거예요.”



문을 열자마자 6살 아이가 나를 보고 크게 외친 말이다. 4살짜리 여동생이 뒤에서 “나는 야옹이.” 한다. 손부터 씻으러 화장실에 가니 문 앞까지 따라와 서서 독수리 날개 포즈를 짓는 모습을 하면 서로 자기부터 보라고 재촉한다. 






유치원에서 배우고 왔는지 독수리를 그린다고 신이 나서 양팔을 벌리고 사선을 그리며 온 거실을 크게 빙빙 돌았다. '그렇지, 아이들은 하늘 동물이든 육지 동물이든 바다 동물이든 포식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라고 생각했다.







오늘의 미술 재료


다이소 모조 전지: 6장 1,000원

다이소 고체 물감: 79 x109 cm 3,000원





다이소는 간판만 봐도 끌려들어 가게 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가 보면 대체로 진열된 상품이 거기서 거기인데도 괜히 나만 못 본 숨은 보석이 있진 않을까 하며 꼼꼼히 진열대를 관찰하게 된다. 얼마 전 습관처럼 들어간 다이소 미술재료 코너에서 새롭게 내 눈의 띈 재료들을 몇 가지 구입했는데 바로, 전지와 고체 물감이었다.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그냥 한번 써보자 싶어 따지지 않고 바로 계산대로 가져갔던 것이다. 그렇게 가져온 재료는 다시 생각해도 독수리 그리기에 너무 적절했던 것 같다. 바닥에 전지를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힌 후에 실루엣을 땄다.






평소에 사용하던 8절 스케치북에 비해 몇 배는 큰 종이를 채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물감과 붓대신 수채 크레용으로 넓은 면적을 낙서하듯 칠하게 했다. 수채 색연필은 <스타빌로 우디> 제품을 사용했는데 어린아이들이 사용하기 좋게 나온 제품이라 두껍고 짧게 생겨서 손에 잡았을 때 다루기도 좋고 무엇보다 물에 잘 녹는 특징 덕에 물감 대신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스타빌로 우디 색연필을 물티슈로 닦아내 듯이 녹여준다.


오늘 컬러링이 특히 재미있었던 이유는 과정이 다 장난스러웠기 때문이다. 큰 수채색연필로 벅벅 칠해놓은 부분을 물티슈로 방바닥 걸레질하듯이 문질러 주면 물기 때문에 색연필이 녹아 물감으로 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몰입해서 채색이 무척이나 쉬웠다.





물티슈로 그리는 그림




큰 종이에 그리니 칠하는 모습도 예술이다. "우와, 신기하다!"를 반복하며 금세 다 칠해버린 오빠는 “선생님! 다했어요~ 이제 물감 써도 돼요?” 한다. 즐겁게 몰입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더구나 오늘은 새로 산 고체 물감을 준비해왔기 때문에 ‘짠’ 하고 꺼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다시 말하지만 물감을 사며 제품력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3,000원에 이 많은 색깔을? 사면 무조건 득이지.'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용해보니 제품력도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주 쓰려고 하는 살구색과 연보라색, 하늘색, 핑크색이 다 담겨있으니 효율이 올라갔다. 다이소는 항상 비슷한 물건들을 파는데 어째 간판만 봐도 홀린 듯 들어가서 뭐라도 사 가지고 나오게 되는 것일까? 했는데 이러니 늘 알뜰살뜰 살펴보는 게 아니겠나 싶다.







얼떨결에 다이소 예찬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네 문구점보다 다이소에 가면 훨씬 좋은걸 살 수 있다는 흐름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봐도 사실 그렇다. 다이소가 점점 소비자가 필요할 것 같은 제품들을 만들어 아주 저렴한 가격에 속속 출시한다. 배경을 칠해도 될 정도의 두꺼운 붓들도 진열대에 걸려 있던데 3자루에 2,000원이면 사실 너무 파격적이다. 탄성도 좋아서 한번 사면 꽤 오래 쓴다. 물론 바바라, 아르쉬, 쉬민케와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각국의 전문가 브랜드에 비할 수 없지만 초등학생용 미술 재료 정도는 다이소에서 구하지 못할 것은 없어 보인다.







혹시 몰라 준비해 간 하얀색 아크릴 물감으로 구름까지 그려주니 정말 하늘을 나는 독수리가 완성되었다. 마음대로 그려지니 신난 아이는 그림 옆에 벌렁 누워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행복의 순간이다.

6세 남자아이의 독수리 그림

벽에 붙여 놓으니 존재감이 엄청나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포스터가 되었다.




이번엔 "야옹, 야오옹~" 하며 그리던 올해 4살이 된 아기 작품.



전지에 눕히니 종이가 한참 남을 정도로 작은 아기. 오빠가 독수리를 그릴 때 "나는 야옹이!"를 외치던 아기는 진짜 고양이를 그렸다. 사실 아직 뭔가를 그리기보단 놀이에 즐거움을 느낄 나이이지만 오빠 하는 것 기필코 따라 해서 그런지, 뭐 하나를 보여주고 알려주면 잘 지켜보고 곧 잘 따라 한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볼을 콕 찔러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종이 위에 눕게 해서 실루엣을 그리고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다.






"고양이 눈 몇 개?"
“두 개”
"코는 몇 개?"
“한 개”
 
아가스러운 질문과 대답을 하며 눈, 코, 입을 그려주니 옆에서 아기가 대단히 멋진 것을 본 것처럼 우와! 우와! 한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다니, 뒷덜미가 살짝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오빠가 하늘을 칠하는 걸 보고 있다가 본인도 파란색으로 고양이 옆구리를 마구 칠한다. 보고 따라 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도 한참을 지켜보았다. 고양이 실루엣은 피해서 옆구리를 신나게 칠하는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가위질도 풀칠도 뭐든 혼자 하고 싶어 해서 뭐든 금방금방 습득하나 보다. 혹시 몰라 함께 챙겨간 크라프트지를 구겨 치마로 입혀줄까? 물으니 풀 뚜껑부터 열어 야무지게 붙이곤 자기 몸만 한 고양이를 보며 아이는 몹시 행복해한다.


매번 아이들에게 받는 게 더 많다. 오늘도 감동만 받고 가는 선생님.










아이들의 숨은 잠재력과 자신감을 찾아내는

미술 시간을 만들어갑니다.





드로잉 에브리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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