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라쿤 카페에 가지 않겠다.
너구리(라쿤)의 귀여운 표정이 담긴 사진과, 그에 딱 맞는 절묘한 말들로 너굴맨 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너굴맨이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구~!’라는 말이 유행했고, 라쿤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애견카페, 애묘 카페에 이어 너구리(라쿤)를 구경할 수 있는 라쿤 카페가 도심에 들어섰다.
필자는 라쿤 카페의 존재를 몰랐으나, 교환학생 시절 친했던 홍콩 친구가 놀러 와서 라쿤 카페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친구는 라쿤 카페가 외국에서 흔치 않고, 오직 한국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라며, 관광책자에도 소개되어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라쿤 카페에는 다국적의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처음 카페에 들어섰을 때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접하는 라쿤이 너무나 신기했고, 귀여웠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라쿤은 네다섯 마리 정도 있었는데, 사람 40명 정도가 핸드폰을 들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어떤 라쿤은 벽 주변에 있는 사람들 위에 올라타서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했다. 사람들은 라쿤에게 어떻게든 밟혀보려고 벽 쪽으로 다가가지 말라는 안내문구를 무시한 채 어깨를 내어 주고 아르바이트생에게 혼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홍콩 친구도 라쿤에게 밟히는 것을 찍어달라며 부탁할 정도였다. 그러곤 계속 이 곳 저곳에서 날뛰는 라쿤을 쫓아다녔다. 인생 샷! 라쿤과의 인생 샷을 남기자! 내적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테이블에 앉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기대한 만큼 라쿤을 편하게 감상할 수 없어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찬찬히 카페의 상황을 관조하게 되었다. 라쿤 한 마리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붙어있었다. 만지고, 사진 찍고, 사료를 준다. 라쿤은 배가 부른 지 음식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사람이 만지면 귀찮은 듯 다른 곳으로 도망갔다. 또 함께 풀어져있는 강아지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강아지와 라쿤은 3차례 정도 싸웠는데, 그때마다 라쿤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딱밤을 맞았다.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그 모습을 촬영하고 라쿤은 억울한 듯했다.(쒸익..)
문득 내가 라쿤이라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다. 너굴맨이 된다면 나는 귀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니 행복할 것이다.(그들 세계에서도 또 외모지상주의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카페에 갇힌다면 매일 처음 보는 괴상한 생명체가 너무나 많을 것이다. 어딜 가나 있고, 끝이 없는.. 벽을 타는 것도 어쩌면 모두와 안녕하고 싶은 염원은 아닐지... 라쿤은 졸귀지만(졸라 귀여움), 졸귀일 거 같았다.(졸라 귀찮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몹시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라쿤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인간의 술수에 내가 넘어가버렸구나... 귀여운 게 짱이지만 쟤들 입장에서 난 안 귀여울 텐데...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동물의 소유주로서 그들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동물은 감정이 없을까?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동물들은 자신의 규칙과 질서를 가지고 알아서 ‘잘’ 살아가는데, 사람들의 욕망이 동물들을 귀찮게 만드는 것 같다. 심드렁한 애견카페의 강아지와 예민한 애묘 카페의 고양이 쉴틈 없이 도망 다니는 라쿤들. 나는 악의를 가지고 라쿤 카페에 들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들에게는 내가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동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카페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혹시라도 라쿤이 직접 라쿤 카페를 차리면 가겠다. 너굴맨이 라쿤의 스트레스를 해결해주길. 그래서 내가 안심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