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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Oct 30. 2021

일단은 만들어 주세요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었던 걸까.


요 몇 주간 진로 탐색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질문에 답하면 답 할수록 젖은 빨래처럼 축축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멍청이 같았냐 하면, 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게 있으면서 실천에 옮기는 건 두려워했다. 이유는 실패하거나 별 볼일 없어질까 봐. 더 최악인 것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아예 실패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다른 차선책으로 할 수 있는 직업만 자꾸 탐색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 그러니까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건 유튜브인데요....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제가 쓴 글을 씌우고 영상으로 바꾸는 일을 해보고 싶은데요.... 근데 그런 게 조회 수가 나올까요? 누가 봐주긴 할까요? 그런 영상 하나 편집하려면 반나절은 걸릴 텐데, 그렇게 하려면 하루를 반납해야 하는데, 제가 그렇게 일 년 365일을 한결같이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가지고요... 그리고 수익이 안 나는데, 돈을 못 버는데 제가 계속할 수 있을까요?"



주절주절 떠들면서 나의 찌질함과 직면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조회 수가 많아야 영상을 찍을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그걸로 돈을 벌 수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크리에이터는 영상을 만들면서 재밌어하는 사람인 건데, 나는 그 즐거움보다 만들어진 뒤의 상황을 더 열심히 생각하고 있잖아.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까 기분이 한 단계 더 축축해졌다. 잔뜩 기가 죽어서 한참 동안 의자에 웅크려 앉아있었다. 창 밖에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현미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앉히고, 냄비에 불을 올렸다. 마침 돼지고기가 좀 있길래, 덮밥을 만들기 위해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뭐야. 나 지금 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들고 있어?









요리를 한다고 의식했을 때는 간장 한 스푼, 마늘 개수에도 집착을 했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 허둥지둥하다가 결국 니맛도 내 맛도 아닌 걸 만들어내곤 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레시피를 슬쩍 보고 대충 감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고추장을 조금 넣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 고추장을 넣었다. 마지막에 참깨를 뿌리면 맛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 참깨를 뿌렸다.


그럴듯하게 만들어진 일본식 덮밥을 그릇에 담으면서, 이런 게 창작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만들어야 실력이 느는 것.

매일매일 만들다 보면 기대감도, 경직도 사라진다는 것. 그러다 보면 재미가 붙는 것.


그러니까 결국, 일단 해야 한다는 것.



지금 먹고 있는 이 따뜻한 고기 덮밥도 요리를 해내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물우물 씹을수록 기운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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