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리는MK Apr 15. 2023

꼬마인 나보다 더 꼬꼬마인 당신

아버지로부터의 독립

지금 나는 무창포로 가족여행을 왔다.


그러나 '가족여행'이라 쓰고 '아버지 탄신일 축하쇼'라고 고쳐 읽는다. 무창포로 오게  경위를 짧게 축약하자면- 아버지 생일을 앞둔 주말, 아버지는 갑자기 지인이 하는 펜션에 가자고 했다. 그리고  손으로   없으니 케이크를 준비하라고 했다. 우리는 알겠다고 했다. 다음 , 거기 가서 음식은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소고기와 요리 재료도 준비하라고 했다. 우리는  알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다음 ,  지인이 우리 집 이사 갈  30만 원을 부조해줬으니, 우리도 부조를 해야 한단다. 그래서 내가?라고 묻자,  지인이  사무실 오픈 했을 때도 30만 원을 부조해 줬다는 것이다. (물론   돈을 구경조차   없다.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러더니  그다음 날에는 아무리 초대받았어도  값은 치르고 와야 하지 않겠냐고, 요즘 펜션 비용은 얼마나 하냐고 물어왔다. 참다못한 엄마가 '당신은  푼도  보태?'라고 하자, 아버지는 수염 뽑힌 선비 같은 표정을 짓고는 우렁차게 말했다. '그럼,  생일인데?'


가족끼리 하룻밤, 그것도 겨우 국내 여행 다녀오는데 장장 60만 원을 쓰게 생긴 것에 엄마는 며칠 동안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계속 으르렁 거렸다. 그런 엄마를 어르고 달래느라 언니와 나는 퇴근 후 소고기를 사러 갔다. 돈을 마련하느라 서로의 통장잔고를 체크하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대체 누가 엄마고 아빠인지 모르겠어. 왜 이러고 살아야 되냐, 우리는?"


불금에 저녁 먹을 시간도 없어서, 겨우 버거킹 햄버거를 입에 문 채 투덜대는 언니의 음성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게. 우리는 아직도 햄버거가 맛있고, 작은 말에도 상처받는 어린아이의 마음 그대로인데. 부모는 왜 점점 더 어린애 같아지고, 결혼도 하지 않은 우리가 왜 미운 일곱 살 같은 노인들을 어르고 달래며 살고 있을까.





요 며칠간 잘 안 풀리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일 자체보다는 그 일에 대처하는 내 태도에 더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강의를 하겠다고 덥석 맡았는데, 내가 처음 다뤄보는 앱과 장비 때문에 강의 원고 작성에 무척 애를 먹었다. 게다가 나와 같이 특강을 하기로 한 강사 선생님은 벌써 원고를 제출한 상태였다. 그 원고를 읽고 나니, 마음속에서 온갖 비난과 열등감이 올라와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다음 날, 나는 내가 사용하는 장비 외에 다른 장비로는 강의가 어렵겠다고, 강의하기로 한 내용을 수정하면 안 되겠냐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굽신거리고 연신 사과하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내가 잘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강의를 펑크내거나 상식 이하의 요구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납작 엎드릴 필요는 없었는데. 답신이 없는 채팅창을 쳐다보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씁쓸함을 느꼈다.


'나부터가 내 편이 아닌데, 남이 내 편을 들어주길 바라니 두 배로 더 힘든 거지...'


그러자 양복을 입은 꼬마인 내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사람은 마음속에 누구나 어린아이가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 유명한 저서 <아티스트 웨이>에서는 마음속의 어린아이에게 절대 노동을 시키지 말고, 항상 사랑으로 대하며,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 자아'가 해야 할 일까지 그 어린아이에게 몽땅 다 떠맡겼으니, 사는 게 참 고달플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어린 자아'만이 '나'라고 철석같이 믿어왔다. 사회적 자아가 해낸 성취와 시간들을 부정하면서, 나를 돌봐주는 양육자의 시선은 늘 '잘 모르겠다'는 영역에 둔 채로.


그래, 어린 자아만 내가 아니었다. 만화를 그리고 강의를 해온 것도 나. 아이들을 가르쳤던 것도 나. 부모님을 케어하고 안마의자를 사는 것도 나. 그 모두가 '나'이지 않은가. 과연, 신체의 나이에 따라 자아도 같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처럼 70이 넘어도 자기 손으로 그릇 하나 씻을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인 5살짜리 자아도 있을 수 있고, 우리 어머니처럼 환갑이 넘어도 늘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싶어 하는 중학생 소녀의 자아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어느 날은 중학생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일곱 살 같기도 하며, 때로는 부처가 떠오를 때도 있다. 오늘처럼 무창포로 오면서 계속 생떼를 부리는 아버지를 대할 때의 나 모습을 떠올리면, 스스로도 내 자신이 성인군자 같을 때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가족들과 바닷가를 거닐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이제 더는 내게 폭력을 휘두르던,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되지 않았던 당신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알아버린 것이다. 아버지가 성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70이어도 어린애 그대로인 당신을, 다섯 살짜리인 아버지를 그제야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 더는 그의 비난과 평가가 더 이상 나를 상처 줄 것 같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꼬마가 꼬마에게 인상 쓰며 하는 말들은 아무리 폼 잡아봤자 더 이상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가 어떤 (빻은) 말을 하던지 그냥 '네, 그렇군요.' 하고 웃으면서 대꾸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손에 아이스크림까지 쥐어주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정도 결제는 할 수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