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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는MK Mar 23. 2021

위로 받을 땐 캔디처럼






힘 내, 열심히 해!  


응원 할 때 전형적으로 하는 소리지만 

사실 이 말만큼 나를 기운 빠지게 하는 소리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엄청나게 힘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이미 엄청나게 열심히 해버린 다음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쥐어 짤 힘도 남아있지 않은데,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하는 방법은 알지도 못하는데, 여기서 대체 어떻게 더 힘을 내고 열심히 하라는 거야. 이렇듯 위로의 말을 듣고 나면 더 음침하게 삐뚤어지는 나 자신을 느끼게 된다.





속이 좁고 못난 내가 드러나게 되는

마법같은 긍정의 말,



힘 내. 열심히 해!



이 말을 듣고 진짜로 힘을 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나는 정말로 부럽다.

그런 사람은 순정해서 구김살이 없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애니메이션 중에 <캔디캔디>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건 순전히 캔디 때문이었다. 그 애가 언덕 위의 왕자님과 테리우스, 미소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해서가 아니었다. 남에게 쉽게 위로받고 금세 기운을 차리는 캔디의 쿨 한 성격이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캔디는 벽창호 수녀님과 닐에게 아무리 면박을 당해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웃고 긍정했다. 누가 조금만 뭐라 그래도 삐죽거리고 토라지던 나와는 정 반대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실망하고 속상해하는 나 자신은 어린 내가 봐도 참 별로였다. 그럴 때마다 못난이 인형처럼 비죽 비죽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아아.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야. 네가 정말 부럽다. 나는 왜 캔디가 아닌 걸까. 왜 이런 일에 마음이 외롭고 슬프고 속이 상하는 걸까. 네가 정말 부럽다. 캔디야.’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언덕 위의 왕자님에게 위로 받던 캔디의 모습이었다. 고아원에서 제일 친한 친구인 애니가 입양을 갔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보내온 편지엔 절교하자는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캔디는 바람이 부는 언덕으로 올라가 울기 시작했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캔디는 원망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그저 ‘아빠가 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이니? 애니야, 나도 아빠가 가지고 싶어.’ 라며 순수한 슬픔에 잠겨 울었다. 그게 나에게 1차 충격이었다. 어떻게 애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지? 캔디는 정말 마음이 깨끗하고 쿨하구나.



2차 충격은 언덕 위의 왕자님이 등장하고 난 뒤의 상황이었다. 불쑥 나타난 낯선 남자를 보고 경계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꼬마 아가씨, 우는 것보다 웃는 얼굴이 더 귀여워’ 라는 말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 아무리 왕자님이 미소년이었다고 하지만 최악의 날에 어떻게 그렇게 밝고 구김 없이 웃을 수 있었을까. 심지어 사랑에 빠지기 까지 했다. 캔디는 언덕 위의 왕자님에게 반했지만, 나는 캔디의 좋은 성격에 반했다.  



지금도 나는 캔디가 부럽다. 그 애처럼 잘 위로받고 싶다. ‘힘 내’라는 긍정적인 말이든, ‘열심히 해’ 라는 상투적인 말이든, 짧은 말이든, 서툰 말이든, 나를 위로해주려고 하는 그 자체를 고마워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마음을 한 점 구김 없이, 상처 하나 없이 고이 받는 순정 만화 같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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