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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정환 Apr 21. 2016

제주종합문화예술센터를 만나다

어제(2016.4.21) 제주종합문화예술센터(가칭) 총괄기획자 이도영님을 찾아뵙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억나는 몇가지 이야기들을 기록해 봅니다.


[지하] 이곳에서 제주 청소년들과 예술가가 함께 한 예술 워크샵 '제주를 꼴라주하다'의 결과물을 보고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제주대병원의 낡은 지하 콘크리트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자유로움을 발산할 수 있는 예술적 해방구가 되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써내려간 랩은 저절로 라임이 읽혀지더군요. 제주의 청소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섬에서 태어나 괸당(친척을 뜻하는 제주어로 최근에는 학연, 지연까지 확장)에 둘러싸여 자라나면서 자유로운 해방 아지트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그런지 예술 워크샵이 제주 아이들은 더 즐겁게 몰입하여 참여했고 분출된게 아닐까요. 프로그램을 진행한 예술가들도 육지보다 더 강한 에너지를 느꼈고 많이 배웠다고 합니다. 이 워크샵을 경험한 아이들 중에 바스키아처럼 엄청난 아티스트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3층 서쪽] 제주섬과 한라산을 형상화한 아이들의 멋진 집단 창작물이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는 제주가 '땅의 끝과 끝이 있는 세계 전체'였을 수 있겠지요. 아이들이 그린 지도와 조형물의 크기의 비율이 눈에 띕니다. 풍력발전기(저는 풍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가 상당히 크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라산은 용암을 형형색색 분출하고 있구요(아이들의 창작에너지의 분출이 아닐까요). 바다에서는 용출수가 건물에 드리워진 폐파이프를 타고 오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마음의 배분을 알까요? 제주시내는 작게 표현되어 있고 애월과 조천이 거의 맞닿아 있었습니다. 둘러산 섬들이 잘 표현되어 있었구요. 제주의 미래를 만들어갈 아이들의 마음속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제주의 부모님들과 이주민들이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작업을 통해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3층 동쪽] 앉아서 두시간 정도 수다를 하며 놀았던 것 같습니다. 멋진 인테리어에 와인이 아닌, 콘크리트벽에 삼다수에 HWP 공공 문서가 테이블에 있었지만(우리가 하는 일이 공공기관과 함께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는), 우리에겐 더 할 나위없이 좋은 살롱문화의 공간이었죠. 제주종합문화예술센터(가칭입니다. 좋은 이름을 찾는다고 하네요)는 예술가가 지역민과 함께 하는 Socially Engaged Art를 지향하는 색깔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센터의 공간 설계와 프로그램 등이 그런 것에 엮여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있게 해 왔던 예술적 개입(Artistic Intervention)이나, 커뮤니티와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을 주는 환경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것이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같은 맥락이 있고, 체류 프로그램, 코워킹 프로그램, 크래비티(cravity = creativity + gravity) 프로그램 등에 있어 시너지가 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주의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제 평상시 생각을 풀어낸 것이긴 하지만, 공감을 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함께 같은 화두를 가진 분들이 생겨 좋습니다. 저는 '제주에 18,000개의 신화가 있다'는 것이 큰 자산이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뭔가 찜찜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18,000개를 숫자로 정의하는 순간 신화는 죽는게 아닐까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현대의 신호등에도 신화가 숨어있다'고 얘기하듯이,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우리 종의 특징이 신화를 만들고 활용하는 것에 있다고 했듯이, 제주 신화의 특징은 '누구나 신화를 지어낼 수 있다'는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고대그리스 신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문화된 것이고 그것이 요리되어 로마, 프랑스, 영국 등을 거치면서 유럽의 역사와 문화상품이 된 것이라면, '제주 신화'의 특징을 그냥 그 생성력 자체를 신화로 보면 어떨까요.

제주의 신화는 아이들이 '제주를 꼴라주하다'에서 형상화한 제주의 모습처럼 활화산이 아닐까요. 누구나 신화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것에 본질이 있는게 아닐까요. 이곳에서 열린 청소년들의 예술 워크샵이 제주 신화 워크샵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신이 속한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해석하는 과정', '자신의 신화를 만드는 과정'이며 이렇게 주체성, 현재성, 대중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서 '신화ing'라 하면 어떨까요? 과거의 제주민 뿐 아니라 현재의 미래의 제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신화(myth-ing)를 통해 세계가 내 것(My-thing)이 되어 가는 과정이 제주 신화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화이민자가 많이 내려오는 것도 도시에서의 획일적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자신의 '신화의 힘'에 이끌려서가 아닐까요.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그것이 제주의 '창의적 중력, 크래비티(cravity = creativity + gravity)'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2016.4.22 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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