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견문록
윤종신 - 9月
마침내 무더운 여름과 이별이다. 초저녁의 선선한 공기를 마주하며, 묵혀둔 긴팔 셔츠와 가을 플레이리스트를 꺼내 한껏 기분을 내본다. 일 년 새 잊었던 가을의 기억이 다시 온몸을 구석구석 깨우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9월도 어느새 끝무렵이다. <9월의 끝을 잡고> 한 달간 내가 재미있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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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의 계열사 COS가 14년 만에 브랜드 로고를 업데이트하였다.
디자이너라면, Pinterest에서 COS의 로고/사이니지 디자인 사례를 스크랩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COS 로고가 지닌 개성, 구체적으로는 Negative Space를 활용한 실루엣 형태의 타입 디자인은 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하였고, 필자 역시 COS Design의 팬이다.
COS의 가을 세일이 시작된다는 배너를 발견하고, 곧장 들어가 쇼핑을 하려던 그때. 어? 뭔가.. 달라진 느낌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자세히 살펴보니 로고가 아주 정직한 산세리프 타입으로 바뀌어있는 게 아닌가.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로고 미니멀리즘의 흐름을 생각하면 사실 당연하고 합리적인 결과물이라, 이에 대한 기사나 리브랜딩에 대한 거창한 설명은 찾기 어려웠지만, 소식에 따르면 9월 런던 패션 위크에서 2021 F/W 패션쇼를 바뀐 로고와 함께 시작할 것이라 한다. 공식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의 로고도 발 빠르게 교체되었다.
브랜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COS는 대중들에게 충분히 학습된 브랜드이다. 우리가 COS의 파사드, 매장의 분위기, 쇼핑백의 모양, 옷의 색감이나 스타일에 대해 쉽게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증명할 수 있다.
때문에 로고가 가진 개성을 잠시 내려놓는다 하더라도 쉽게 무너질 요인이 없다. 그보다, 오프라인 대비 온라인 구매가 늘어나는 현시점에서 다양한 디지털 터치포인트의 적용에 용이하고, 사용자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지금의 로고보다 단단한 형태가 필요했을 것이다.
COS의 상징적인 로고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현명하고 조용한 변화라 느꼈다.
밀레니얼 세대에게 MTV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런 브랜드이다. 최근 브랜드 씬에서 화제인 Motv 의 대표 상징 또한 MTV 로고의 오마주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겐 추억이고 러브마크였을 MTV 또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로고 리뉴얼을 진행하였다.
얼핏 보기엔 어디가 바뀌었는지 모를 정도로,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리뉴얼에는 꽤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디지털 리마스터 작업은 위에서 소개한 COS의 사례와 같은 흐름이며, 주변에서 가장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사례는 자동차 브랜드들의 심볼 변화인데, 모바일과 웹 환경(자동차라면 내부 스크린 등)에 최적화하기 위해 로고의 비율, 픽셀, 색상 등을 재정비하는 작업이다.
새 로고는 모바일과 웹 규격에 맞추어 16:9의 비율로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며 색상 팔레트 또한 화면에 최적화된 16진수 색상들로 새롭게 지정되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M 이니셜을 기반으로 M Frame이라는 그래픽 모티프를 개발했다는 것인데, 단편적인 로고 확장의 예로 보일 수 있으나 그 활용 범위와 형태를 살펴보면 꽤나 재미있는 발상이라 느껴진다.
사실 요즘 친구들(Z세대라 불리는)에게 MTV라는 브랜드가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른다.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프로그램은 저지 쇼어(jersey shore)라는 사뭇 외설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니.. 나의 유년시절에는 원탑으로 여겨지던 음악+엔터테인먼트 채널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 이번 변화와 함께 MTV의 존재감이 다시 굳건해지길 바라며.
대한민국은 지금 댄서 열풍,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앓이 중이다. 가수와 연예인의 무대를 꾸며주는 전문 백업댄서 여덟 팀이 모여, 그들의 스페셜티를 뽐내고 그중 최고의 팀을 가려내는 경연 프로그램이다.
사실 나는 경연 프로그램을 끝까지 잘 보지 못한다. 경쟁심이 많고, 선의의 경쟁이라면 반기는 성향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여가시간까지 경쟁을 마주하는 스트레스는 감행하기가 어려웠다. 이유인즉슨, 자꾸만 탈락한 후보들의 감정과 마음에 이입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스우파도 결국 같은 맥락을 가진 프로그램이라, 한편으로는 원성을 사고 있지만 첫인상은 사뭇 달랐다.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빠져드는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댄서'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2)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춤사위와 언행에 심장 폭격을 당한다
3) 캐릭터들의 매력에 빠져 '덕질'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유튜브의 모든 흔적을 뒤지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니,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잘 구축한 캐릭터들이 주 요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만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적어도 10년 이상 꾸준히 그 일을 해야한다고 하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특히 화제가 되고 있는 각 팀의 리더 캐릭터들은 어린 나이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해 평균 10년 이상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들을 회사원으로 비유하면 '실무형리더'이기 때문에 '고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모두 느꼈겠지만, 리더계급의 춤에는 명확히 연륜과 디테일이 존재했다. 이 리더들이 이른바 걸크러시를 뿜어내며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화려한 춤은 기본, 팀 안에서 멋진 리더십을 발휘하는 그들의 언행, 오랜 시간 쌓아온 개인과 개인 / 팀과 팀의 흥미로운 관계성 등이다. 이렇듯 요즘 브랜드, 요즘 마케팅의 성공 요인에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들의 '성향', '취향', '세계관'이 큰 영향을 주는 듯하다. 예전에는 브랜드 스스로 특정 스토리를 설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활동을 전개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에는 역으로 '잘 구축된 캐릭터'를 브랜드가 스카우트하는 방향이 많아지고 있다. JTBC '트래블러'에서 라이카 M10을 들고 사진 찍는 것을 즐기던 류준열이 라이카의 앰베서더가 된 것, JEEP 랭글러를 10년간 탔다는 가수 비가 JEEP의 앰베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것들이 취향 확고한, 완성된 캐릭터(a.k.a.성덕)들을 활용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환불 원정대', 'MSG Wannabe' 등 '부캐' 열풍이 불었던 이유도 결국은 '본캐'가 가진 매력의 또다른 모습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나만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소신있게 꾸려나가기만 해도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거나, 그것이 비즈니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좋은 강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퍼스널 브랜딩이란 중이 제 머리를 깎는 것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 추석 연휴에 만난 외삼촌과 맥주를 한 잔 하는데, 이런 질문을 하셨다. "맥주를 살 때 이런 디자인을 보고 사나?" 그럼요! 맥주 살 때 라벨 디자인을 보고 고른다는 말은 이제 당연한 말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집에 맥주만을 위한 '술장고'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주류 문화를 사랑한다. 통유리로 되어있는 쇼케이스 안에는 무조건 예쁘고 개성있는 라벨을 가진 맥주만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나만의 법칙이 있다. 새로운 맥주가 출시 될 때마다 편의점을 발품 팔아 돌아다니곤 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주세법 개정으로 국내 수제 맥주 브루어리들이 많아지고,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각양각색의 컨셉과 디자인, 맛을 지닌 맥주들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구매욕구를 자극한 맥주는 크래프트 브로스의 LIFE 맥주이다.
LIFE 브랜드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흑백 사진과 빨간딱지 마크. 그 이미지를 맥주캔에 둘렀다. 최근 다양한 라벨들을 보았지만, LIFE의 사진을 활용한 것을 꽤나 신박하고 탁월하다 느낀다. 실제로 맛보지 않아서 평가하긴 이르지만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전국 CU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하니 눈에 보이는 순간 담아올 예정이다. 편의점 선반에 일렬로 나열되어있는 흑백의 라벨을 상상해본다. 나의 시대에는 실제로 마주하지 못했던 마릴린 먼로의 깊은 눈빛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맥주의 구매 요인은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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