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일본, 쓰시마에 가보자.
필자의 친언니는 부산에 살고 있다.
부산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한 오륙도 부근이 언니의 집이다. 그곳에 놀러 갈 때면 아침마다 해안 둘레길인 '갈맷길'을 거닐곤 했는데, 갈맷길을 조금 오르다 보면 망원경으로 전망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날 좋을 때 여기 서서 저 멀리를 보면, 일본 쓰시마 섬이 보여.
한 번은 무심코, 다음번엔 약간의 호기심 발동으로 그곳을 바라보다가 어느 날 문득 가보고 싶어 졌다.
생각난 김에 인터넷으로 뱃삯을 검색해보니 왕복 1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종종 저지르고 보는 성향이 발동하는 나는 일단 배편을 예약하고, 이어서 재빨리 숙소 등을 찾아 대강의 준비를 마쳤다. 갑자기 가게 된 여행이었기에 경비는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땐 몰랐지만, 최소화하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쓰시마 섬에서는 그다지 큰돈을 쓸 일이 없었다)
쓰시마 섬에 가기 전날 도착한 부산은 생각보다 너무나 따뜻했는데. 패딩 없이 맨투맨 하나만 달랑 입어도 따뜻했는데. 그래서 지레 자만했나 보다. 쓰시마 섬의 공기는 차갑게 내 볼을 스치며 '도대체 뭘 기대한 거야?'라고 툴툴거리는 듯했다. 약간 놀란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미리 예약해둔 렌터카를 찾으러 이동했다. 한인이 운영하는 렌터카 회사는 찾기 어렵지 않았고, 자동차 수령도 매우 빨랐다. 배로 이동한 덕에 복잡한 수속 절차도 없었고, 대기 시간도 거의 없었으며 어떠한 딜레이도 없이 순탄하게 진행됐다. (이러한 점은 선박 여행의 큰 장점인 것 같다. 단점은 멀미.)
일본에서의 렌터카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오키나와 섬에서였다. 어쩌다 보니 두 개의 섬에서 렌터카를 끄는 경험을 했다. 나는 조금 이상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운전을 하지 않고 일본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한다. 그 이유가 한국에서는 내가 운전을 할 일이 거의 없고, 일본에서는 '내가' 꼭 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본의 운전문화와 에티켓이 나를 심적으로 안정시켜주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의 '더도 덜도 아닌 적당함'을 중요시하는 마인드가 자동차에도 녹아져 있는 것 같다. 일본 자동차의 계기판에는 과한 속도가 생략되어있다. 고속도로의 최고 제한속도도 100km/h로 성격 급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할 수도 있다. 클락션은 절대 울리는 법이 없고 추월도 잘 하지 않는다.
쓰시마 섬에서 마주한 자동차는 다마스의 생김새를 닮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깔끔한 흰색은 무언가 여행의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처음 네비를 찍고 간 곳은 식당이었다. 도착시간이 점심시간에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허기진 배를 안고 미리 찾아두었던 식당으로 향했다. 쓰시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거제도보다 좀 더 큰 정도의 섬이랄까? 사실 작은 섬이라 식당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식당들 중에서도 건국기념일 덕에 쉬는 곳이 많았다. 다행히 내가 찾은 초밥집은 열려있었다. 첫 끼를 초밥으로 채울 생각에 신이 나있던 주문 후, 그 순간..
왜 그 찰나에 스시와 사시미를 헷갈렸을까. 스시가 먹고 싶었는데 나는 사시미 정식을 시켜버렸다. 울며 겨자 먹기 아닌 사시미 먹기. 회가 싱싱했고 갓 지은 밥에 올려먹는 사시미는 별미였지만 자꾸만 옆 테이블에서 먹는 초밥에 눈이 간 건 왜 때문이죠?
붕장어 덮밥은 깔끔했고 바로 앞에서 구워준 탓인지 맛이 배가되었다. 평소에 장어를 잘 먹지 않았는데 이걸 먹고 장어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이동-
항구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미우다 해변에 들렀다. 추운 날씨에 해변 근처로 가니 바람까지 더해져 귀가 떨어질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꿋꿋하게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었다. (하하하) 몇몇 자전거 여행족들은 자전거를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얼굴을 하고 지나갔다. 겨울 여행에 렌터카는 옳은 선택이었다.
한 시간 남짓을 차로 이동하여 와타즈미 신사에 도착했다. 이 곳은 일본의 가장 오래된 신사 중 하나로, 바다를 향해 뻗은 3개의 토리이가 만조 때 바다에 잠기는 모습이 멋진 곳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부터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떠날 때 쯔음엔 완전히 잠기었다. 물에 잠긴 토리이는 주변에 기묘한 느낌을 형성했다.
본래 계획으로는 최북단의 히타카츠 항에서 출발하여 중부의 볼거리를 보고 최남단의 이즈하라 항까지 도달하는 것이었지만, 중부에 위치한 와타즈미 신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이미 4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겨울이고 시골 마을이기에 빛은 빠른 속도로 어둠으로 돌변할 터였다. 재빠르게 다음 목적지이자 가장 가보고 싶었던 에보시다케 전망대로 향했다.
날이 다소 흐리고, 추위가 맹렬했지만 우리는 기꺼이 에보시다케 전망대까지 오르고 또 올랐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법하게 추웠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몇 초간 입이 떡 벌어졌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것을 만들어 인간들의 넋을 빼놓는가. 전망대 위로 아소만이 펼쳐져 있고 리아스식으로 된 해안을 감상할 수 있다. 곧이어 해가 지려는 낌새가 보였기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8시가 다 되어 숙소에 체크인을 마쳤고, 발 빠르게 저녁 식사를 하러 나왔지만 무언가 다들 문을 닫는 모양새였다. 불안해진 순간, 우리가 방문하고자 했던 식당에 불이 켜져 있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입장했다.
야에 식당. 가게의 오른쪽은 낮에 식당을 하고, 왼쪽에서는 밤에 이자카야를 하는 가족 식당이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 곳에서의 식사 경험은 내 일본 여행 모두를 통틀어 최악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술이 얼큰하게 취한 두 남성이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말을 걸며 낄낄 웃었고, 주인의 딸로 보이는 여성은 주문을 받을 때 우리가 일본어를 못 알아듣자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소심한 나와 내 남자 친구는 한마디로 '쫄아서' 식사를 마쳤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숙소로 돌아왔다. 식당이라는 공간은 음식과 맛이 단연 중요한 곳이지만, 손님이 비로소 완성하는 공간이 아닌가? 손님에 대한 자세가, 게다가 이곳을 처음 맞이하는 타국인을 마주하는 태도가 부정적이라는 것은 어쩌면 업의 본질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여행 전에 넷플릭스에서 '방랑의 미식가'를 보았다. 주인공이 도쿄의 정갈한 오뎅 바에서 어묵과 정종을 맛있게 먹었다. 무, 간장 계란, 토마토 등을 연이어 먹던 그 장면이 나에게 어떤 환상으로 자리 잡아서 다음에 일본 여행을 하면 꼭 오뎅 바에 가봐야지 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이 곳 쓰시마 섬에서 셀프 오뎅 바를 찾았는데... 연이은 홀대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두근거림도 환상도 사라져 버렸다. 다음엔 친절한 사장님이 있는 오뎅 바를 찾았으면 한다.
맛있는 음식을 맛없게 먹고선 우리가 묵기로 한 민숙 집에 돌아왔다. 우리를 위로해주는 듯 민숙 집주인 아저씨는 편하게 묵으라며 연신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갑자기 떠나온 쓰시마 섬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두 번째 글로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