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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롱 Apr 01. 2023

알림장과 받아쓰기노트, 풀

초등학교 1학년 준비물.

21C. 지금은 5G시대.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를 찾는 것은 어플리케이션 하나를 실행시키고 글자  개를 타이핑 해서 검색만 하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30대 중반의 나의 어린시절을 살펴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5G는 커녕, 4G, 3G, 2G, 광랜, VDSL, ADSL, 천리안 나우누리와 같은 모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천리안을 사용했던 그 시절이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다.

즉, 그보다 더 오래된 나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TV매체나 이웃의 조언, 신문 정도로 밖에 정보를 접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이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각각 전라도, 충청도 태생이신데 어찌어찌하다 서울 생활을 마감하고,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H중공업이라는 직장때문에 울산이라는 낯선 도시에 정착하게 되셨고, 결혼 후 이듬해 내가 태어났다. 젊은 부부에게 첫 아이인지라 애지중지 키우셨지만,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주변 이웃이 나와 동년배 밖에 없었기에 정보를 얻기가 사뭇 어려웠다. 혹여나 한두살 터울의 이웃이라도 있었다면 학교에서 제시하는 준비물을 준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나서, 첫주. 담임선생님께서는 알림장을 가져오라고 아이들에게 전달하였고, 나는 어머니께 알림장을 가져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처음 키워보시고, 문구에 대해서 전혀모르시던 우리 어머니께서 알림장이 무엇인지 알리가 없으셨다. 문구점이나 문방구의 존재는 더더욱 모르셨고 말이다. 그래서 다음날 빈손으로 나를 학교에 보내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무엇인지 알아오라는 오더). 다음 날 학교에 가서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이 알림장이라는 노트를 펼쳐놓고 부모님께 전하는 지금의 가정통신문의 내용을 알림장에 적어서 들고가는 걸 보고, 알림장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혼자만 빈손이었던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테고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신 어머니를 원망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선생님은 나에게 알림장을 다음 번엔 가져오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받아쓰기용 전용 노트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1번에서 10번까지 칸이 적혀있고(고학년용은 20번까지 있다), 선생님께서 불러주는 문장을 수업시간에 받아쓰는 그런 노트였다. 이 노트 역시 나에겐 알림장과 같이 썩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1학년 때 담임은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정도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내가 받아쓰기 노트를 선생님께서 챙겨오라고 말씀하셨다고 어머니께 전달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일반 노트를 나에게 주셨다. 첫 받아쓰기날. 나는 받아쓰기 10문장 중 1문장도 제대로 쓰지못하는 수준이었지만, 담임이 채점한다고 받아쓰기 노트를 걷어갔을 . 나만 받아쓰기 전용 노트가 아닌 것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아니면 어머니께 정말 받아쓰기 전용 노트의 존재를 알려주시고 싶으셨던 건지 알림장에 "받아쓰기 전용 노트를 구매해서 준비해주세요" 라고 써서 주셨다. 물론 우리 어머니께서 학생용 문구류에 대해 잘 모르셨던게 문제기도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받아쓰기 전용 노트든 일반 노트든 무슨상관이었을까. 알림장에 적은 저 멘트가 순수하게 나를 생각해서 쓰셨던 건지, 그런것도 모르시는 어머니를 비꼬아 저격하셨던 건지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나이가 들어도 기억도 나지않는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그 일들 중 이런 에피소드만이 자꾸만 불쾌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좋은 말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네이버 이미지검색

"풀 가져오세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무언가를 만들고 붙이기 위한 준비물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문구에 대해서 모르시는 우리 어머니께서는 풀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시다, 그날 밤 시간을 오래 투자하셔서 풀을 만들어 주셨다. 도배에나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찹쌀로 풀을 쑤셔서말이다. 다음날 위생봉투에 찹쌀풀을 한가득 들고간 나에게 담임선생님께서는 뭔가 알 수 없는 눈빛을 보내셨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알림장에 "풀은 문구점에서 구매하셔서 보내주세요."라고 써주셨다.




1996년. 생전 처음 아들을 학교에 보냈던 어머니. 후에 3살 터울인 동생이 학교에 갔을 땐 반복된 실수를 안하셨지만, 왠지 모를 좋았는지 나빴었는지조차 아리송한 기억 속 1학년 담임선생님과의 에피소드가 이 나이가 되어서도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어머니의 실수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그걸 하나하나 지적하던 담임에 대한 불쾌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담임의 안타까움의 눈빛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담임의 배려의 메세지를 눈치채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둔감함 때문인 것일까? 알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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