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롱 Apr 04. 2023

무지개맛 사탕

감정캔디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책상 위 한편에 놓여져 있는 사탕통에서 사탕을 한개 집어들었다. 요즘 세대를 관통하는 무지개맛 사탕이다.


코로나 19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는 언텍트 시대에 살게 되었고, 타인과의 교류 대신 모든 일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더이상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간관계를 실천하지 않아도 이 무지개맛 사탕이면 7가지 어떠한 감정이든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사탕하나에 7가지 감정의 맛이 나는 발명품 탓에 우리 인류는 저출산시대를 뛰어넘어 인구 소멸 시기에 접어들었다.


탕 하나에 세상의 온갖 희노애락을 다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오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간단한 업무를 끝내고, 탕껍질을 까버리고 사탕을 입에 넣었다.




첫 맛은 보라색의 맛이 났다. 우울의 맛이다. 문득 코로나 시대 이전의 사람들과 교류하던 시절이 생각나, 혼자있는 나를 떠올리니 우울해져 버렸다. 언택트 시대가 되고 나서 혼자 있는 감각에 익숙해 졌지만, 무지개맛 사탕의 보라색 맛을 느낄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불쾌한 감정이 온몸을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혓바닥을 재빨리 굴려 입속의 사탕의 다른 면을 핥기 시작했다.


두 번째 맛은, 주황색의 맛이 났다. 분노의 맛이다. 우울의 맛 다음에 맛보는 분노의 맛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재수없는 맛이 연속으로 걸렸다. 재수 없는 내 자신에 화가 났다. 주황색을 접하면 갑자기 별거 아닌 일에 짜증이 치솟는다. 무지개맛 사탕을 만든 과학자들이 왜 이따위 감정의 맛 넣었는지 짜증이 난다. 빌어먹을 인생은 사탕에서도 여전하다. 가까스로 화를 삭히며 입속의 사탕을 반대로 180도 굴렸다.


세 번째 맛은 사랑의 맛이었다. 빨강. 연애라는 감정을 잃어버린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입속의 빨강맛 캔디는 내가 이상적인 연인과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첫사랑의 기억도 함께 떠올랐고, 첫 고백, 첫 키스 등 다양한 첫번째 스킨십들이 생각났다. 입속의 캔디를 굴리지 않고 오랫동안 음미하고 싶었지만, 우울과 분노와는 달리 어느샌가 입속의 빨강색 맛은 다음 맛으로 변하고 있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네 째 맛은 노랑이었다. 슬픔의 맛이었다.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이상적 연인이, 첫사랑이, 사랑의 감정들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빨강노랑의 연속적인 맛의 향연은 보라색과 주황색 처럼 불쾌한 기분을 연속적으로 들게 만들었다. 잠시 허탈감에 젖어있던 찰나 네번째 맛도 금방 사그라 들었다.


슬픔 다음에, 입속에서 피어난 다섯번 째 맛은 희망의 맛인 파랑이었다. 연인을 잃어버린 나의 슬픔이 갑자기 머리속에서 드넓게 펼쳐지며 망망대해로 전환되었다. 이 넓은 바다 어딘가에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희망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구나. 행복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희망이 생기니 더이상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사탕을 깨물어 부수려던 찰나 여섯 번 째 사탕맛이 입속에 퍼져나갔다.


머릿속에서 망망대해를 떠다니던 나는 갑자기 깊은 심해로 려들어갔다. 남색이구나. 절망의 맛.  맛과 접할 때마다 사탕을 먹음을 후회한다. 빨강이나 녹색, 파랑이 주는 긍정적 감정들을 모두 침식해 버리는 마약과도 같은 절망의 맛. 그것이 남색이다. 주위의 분위가 패배감에 휩싸인다. 영원히 여기에 잠들고 싶다. 기분나쁜 어둠속에 하나의 점이 되어간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던 영겁의 시간이 끝나고 초록의 맛이 피어올랐다.


나는 또 성장다. 초록의 맛. 성장의 맛.

씨앗 속에서 작은 새싹을 피어내려면 얼마나 긴 영겁의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꼭 남색의 맛의 절망을 벗어나 녹색의 맛을 느낀 내가 새싹같이 느껴진다. 유독시리 사탕에서 녹지 않는 남색의 맛 덕에 이 무지개색 사탕이 반쯤 마약과 같다는 걸 인지하고 있지만, 랜덤으로 나오는 맛의 순서 덕에 끊을 수 없다. 절망 끝에 마주한 성장의 맛은 사탕의 일부분이지만 시련과 고난, 역경을 뚫어 낸 착각과 함께 나를 성장시킨 것 같이 느껴진다.


입속에서 굴러다니던 무지개맛 사탕이 입속에서 사라졌다. 랜덤으로 나오는 7가지 맛들은 무슨 맛이 걸리든 항상 끝맛은 여운이 남는다. 오늘도 나는 5분도 안되는 짧은 사탕 섭취 시간 내 하루일과 보다 더 소중한 경험을 손에 넣었다.


사탕만 있으면, 죽을 때까지 난 행복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번에는 무슨 맛이 나를 찾아올까? 내일의 사탕이 기다려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