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시간, 그리고 삶을 바꾸는 관점의 힘
거울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이 젊다고 느끼고 있는 거겠지?"
이런 의문을 시작으로 인간이 나이 들어감에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변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는 흔히 '나이를 먹는다'거나 '나이가 들어간다'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마치 인간의 소화량이 견딜 수 있을 만큼 딱 1년씩, 보폭이 잴 수 있을 만큼만 천천히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처럼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아직 이 정도면 젊은 거 아냐"라며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기기만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주관적 나이 효과'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대부분의 성인은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평균 10-15년 젊게 느낀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의식적으로 '젊다'는 생각을 반복하면 불면증 위험이 낮아지고 수면의 질이 향상되며, 고혈압이나 당뇨 등 신체 건강의 질적 향상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 로버트 스타우스키 박사 역시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으며, 늙었다고 자주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노화가 촉진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즉, 우리의 내적 자아는 외적 변화보다 훨씬 천천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음악적 경험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어릴 적, 베이비붐의 아버지 세대는 주로 70-80년대 노래를 즐겨 들었다. 처음에는 그 취향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면 그 노래들 역시 그들의 젊은 시절 최신 유행곡이었을 것이다. 현재 40-50대가 즐기는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그 음악은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타임머신 역할을 한다. 비록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그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가장 젊고 패기 넘쳤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회상 돌출' 또는 '회고 절정' 이론으로 설명한다.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의 심리학자 페트르 자나타는 청소년기에 형성된 감정적 기억이 음악과 결합된다고 지적하며, 사람들이 10대에서 30대 사이의 기억을 특히 강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제시했다. 이 시기는 정체성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로, 그때의 음악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 기억, 감정적 경험과 깊이 얽혀 있다.
신경과학적으로 살펴보면, 향수를 자아내는 음악을 들을 때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동시에 활성화된다. 이는 음악이 단순한 청각 정보가 아니라 개인의 생애사와 깊이 연결된 복합적 기억 체계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기억을 지탱하는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향수적 음악은 통증에 대한 인식을 감소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는 치유적 효과까지 보인다고 한다. (출처: 수술 후 음악 들은 환자와 안 들은 환자, 어떤 차이 발생할까?, kormedi.com)
출처: Lummi.ai ⓒ West Kast
그렇다면 세대 간 음악 취향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70-80년대를 젊은 시절로 보낸 사람들이 90년대나 2000년대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90년대와 2000년대를 젊은 시절로 보낸 사람들이 지금의 노래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은 단순한 세대 차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의미의 부재'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래와 연결된 개인적 경험, 사회적 맥락, 감정적 기억이 없기 때문에 감흥이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음악적 선호도는 멜로디나 리듬의 아름다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음악과 함께한 삶의 장면이 있어야 진정한 울림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간이 노래를 들을 때 수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래는 본질적으로 산문 형태의 글에 리듬을 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래를 듣는 것과 오디오북을 듣는 것은 매우 유사한 경험이며, 차이는 흥얼거릴 수 있느냐 없느냐 정도일 뿐이다. 연구에 따르면 음악은 템포, 피치, 하모니와 같은 특정 음악적 특징을 통해 청취자에게 특정 감정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선호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 즐거움, 보상, 감정 조절과 관련된 뇌 영역을 활성화하여 기분과 삶의 질을 개선시켜 준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많아진다는 현상이다. 경험한 세월이 많으니 생각할 거리도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복잡성의 증가'로 설명한다. 나이가 들수록 축적된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어 더 많은 연상과 성찰의 재료를 제공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시간 전망이 줄어들면서 과거에 대한 반추가 늘어나는 '사회정서선택이론'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늘어난 생각과 성찰을 후회나 반성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지혜의 축적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경험을 바라보는 관점에 달려있다. 같은 현상이라도 어떤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야말로 흔히 이야기하는 회복탄력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은 회복탄력성을 '설명 양식'의 차이로 설명한다. 같은 상황을 개인적이고 영구적이며 전반적인 실패로 보는 사람과 특수하고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어려움으로 보는 사람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전자는 학습된 무력감에 빠지고, 후자는 회복탄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진리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리는 대개 평범하다. 시간 맞춰 잠자고, 밥 먹고, 일하고, 운동하는 단순한 일상의 패턴을 지키는 것조차 쉽지 않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인간이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를 '현재 편향'으로 설명한다. 미래의 이익보다 현재의 만족을 과도하게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익한 습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의 패턴을 꾸준히 지키는 사람들이 대단한 이유는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한계를 극복하는 의지력을 발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반을 튼튼히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항상성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 항상성이 과연 자신의 삶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항상성인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마치 운전할 때와 같다.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가는 중앙선이나 갓길로 이탈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잠시 휴게소에 들르더라도 운전대를 조금씩 중앙선 쪽으로 조정해 올바른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방향이 틀어져 있다면 언젠가 충돌을 겪을 수밖에 없으므로, 때로는 멈춰서 진로를 재점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이에 대한 편견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젊을 때는 패기로 무엇이든 시도하지만, 나이가 들면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도 성공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KFC 창업자 커넬 샌더스는 65세에 KFC를 창업해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기업을 일궜다. 그는 60대에도 포기하지 않고 창업에 도전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치킨 레시피 개발과 열정, 끈기로 투자 유치 및 프랜차이즈 확장을 이루어냈다. 맥도널드의 레이 크록도 52세에 맥도널드 프랜차이즈를 확장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고, 패션 디자이너 베라 왕은 40세에 첫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패션 제국을 세웠다. 마사 스튜어트는 50대에 미디어 제국을 구축했고, 안도 모모후쿠는 48세에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강한 목적의식과 정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자신이 하는 일을 믿는다는 특징이다.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른 나이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인생이 처음부터 술술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시각이 문제라고 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발달 단계 이론에 따르면, 중년 이후에는 '생성감'이라는 독특한 동기가 생긴다고 한다. 이는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남기려는 욕구로, 젊은 시절의 개인적 성취욕과는 다른 차원의 동력을 제공한다. 또한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 성숙한 판단력은 젊은 시절에는 없었던 고유한 자산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사업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할 수 없다는 생각만큼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새로운 도전이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축적된 경험과 성숙한 관점이 더 깊이 있는 성취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음악이 우리에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사하듯, 우리의 인생도 끝없는 가능성의 여행이다. 중요한 것은 나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도전하는 마음, 배우는 자세,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용기이다. 소소하게 시작하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람들도,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사람들도, 부커상을 수상한 사람들 전부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러한 경지에 올랐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먼 훗날 위대한 작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또한 작가가 되는 길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모든 위대한 변화는 작고 볼품없는 초라한 한걸음에서 시작된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자기 마음속의 젊음과 열정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 마음속의 젊음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자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잃는 게 아니다. 어쩌면 오래된 것들의 대한 기억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다만 흘러가는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노래 한 곡이 우리를 청춘으로 데려다주듯, 관점 하나가 삶의 무게를 바꿔놓는다는 것이 과언이 아닌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 않겠는가.
중요한 건, 지나간 세월도, 앞으로 찾아올 세월도 아니라, 그 세월을 살아내는 방식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나이 듦의 지혜와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