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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되지 않을 권리

지리적과 경험적, 그리고 인간적 자유의지

by 닥터브룩스

당신은 일상에서 '이미 정해졌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혹은 불편해지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묘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어떤 거대한 힘들이 우리의 삶을 이미 틀 지워 놓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기도 한다. 이미 앞서 여러 글을 통해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대해서 얘기한 바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디까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결정적 요인들 중에서도 지리적 조건과 경험적 조건을 더한다면 어떤 관계를 성립할 수 있을까?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개인의 능력이나 인종적 우월성이 아닌 지리적 환경으로 설명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업이 발달한 것,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들이 풍부했던 유라시아 대륙이 문명의 선두주자가 된 것, 동서로 긴 대륙의 축을 따라 기술과 작물이 빠르게 전파된 것 모두 지리적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어떤 민족이 앞서고 뒤처지게 된 것은 그들의 노력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어느 땅에서 태어났느냐의 문제였다.


이러한 지리적 결정론은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물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한 지역에서 자란 사람과 사막이나 극지에서 생존해야 했던 사람은 전혀 다른 경험적 토대를 갖게 된다. 전자는 안정성과 계획성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고, 후자는 즉응성과 생존력을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직업이나 생활방식의 차이를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 타인과의 관계 맺는 방식, 심지어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존 로크가 인간의 마음을 백지상태라고 했을 때, 그는 경험이 인간을 만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임마누엘 칸트는 경험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선천적 틀이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두 관점은 상반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상호보완적이다. 지리적 환경이 제공하는 경험들이 로크가 말한 방식으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하지만, 그 경험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의미화할 것인가는 칸트가 말한 본성적 요소들이 결정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로크가 주장하는 경험은 칸트가 주장하는 본성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은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단순한 양적 차이를 넘어서는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 여러 문화권을 경험한 사람과 단일한 환경에서만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지만, 후자는 자신이 익숙한 질서와 규칙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의 인생 궤도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도 모른다. 인생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이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것'일까? 지리적 조건과 초기 경험이 우리의 운명을 완전히 지배한다면, 인간의 노력과 의지는 무의미해진다. 더 나아가 도덕적 책임이나 개인의 성취에 대한 평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위험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지리적 제약을 극복한 수많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섬나라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이뤄낸 것,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전략적 위치를 활용해 글로벌 허브로 성장한 것, 사막 한복판의 두바이가 석유 이후 시대를 준비하며 미래 도시로 변모한 것들이 그 예다. 이들은 주어진 지리적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 한계를 기회로 전환시킨 경우들이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지리적, 경험적 조건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도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 중에는 그 경험을 발판으로 더 큰 성취를 이루는 이도 있고,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이는 객관적 조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며, 바로 여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존재한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수면보다 낮다는 지리적 불리함을 간척 기술의 발달로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해상 무역국가로 발전했다. 스위스는 내륙국이라는 제약을 정밀 기계 공업과 금융업의 발달로 상쇄했다. 이스라엘은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첨단 농업 기술과 혁신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리적 조건이 출발점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종착점까지 미리 정해놓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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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Pexels.com ⓒ 2017 NastyaSensei


그렇다면 경험적 결정론은 어떨까? 개인의 과거 경험이 현재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한다는 것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같은 경험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활용될 수 있다. 실패의 경험을 좌절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것을 더 나은 성공을 위한 학습의 기회이자, 발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다른 이는 그 경험을 통해 더욱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이는 경험 그 자체보다는 경험을 받아들이고 의미화하는 개인의 내적 역량이 더 결정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극한 경험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 것처럼, 가장 절망적인 조건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물론 지리적 조건과 경험적 조건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 경험과 자원 수탈,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교육 기회의 부족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순진한 낙관주의에 불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 잡힌 관점이다. 지리적 조건과 경험적 조건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냉정히 인정하되,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물이 흐르는 방향을 결정하는 지형과 같다. 지형은 물의 흐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만, 물은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때로는 바위를 깎아내리고, 때로는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사례로 여겨진다. 분단과 자원부족이라는 지리적 제약과 정치적 경험적 한계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투자와 기술 혁신을 통해 단기간 내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이는 객관적 조건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성과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동맹, 냉전 구조 속에서의 전략적 위치 등 유리한 지정학적 조건들도 작용했지만, 그러한 기회를 실제로 활용한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과 노력이었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태어날 곳을 선택할 수 없고, 어린 시절의 경험을 스스로 결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에서는 주어진 조건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갖는다. 이 선택권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 짓는 핵심적 특징이며, 동시에 우리가 '이미 결정된 운명'이라는 숙명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근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의지만 강조하는 극단적 자유주의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 구조적 불평등과 환경적 제약을 무시한 채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건의 현실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품는 변증법적 사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리적 결정론과 경험적 결정론은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렌즈이지만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이들은 우리가 어디서 출발하는지,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지를 설명해 주지만,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까지 미리 정해놓지는 못한다. 마치 출발점과 지형을 알려주는 지도와 같다. 지도는 여행에 필수적이지만, 실제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행자의 몫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조건과 자유의지의 변증법적 과정이었다. 빙하기라는 극한의 환경적 조건 속에서도 인류는 불을 다루고 도구를 만들어 생존했다. 농업혁명은 지리적 이점을 가진 지역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실현한 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노력이었다. 산업혁명 역시 석탄과 철광석이 풍부한 영국에서 일어났지만, 그 기술적 혁신은 개인들의 발명과 실험 정신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선택들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조건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경험은 강력하지만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에게는 주어진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균형 잡힌 관점을 유지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인, 겸손하면서도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조건의 힘을 인정하되 그에 굴복하지 않고, 과거의 영향을 받아들이되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인간다운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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