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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소비

소비의 의미와 경험의 소비에 대한 생각

by 닥터브룩스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의 소비'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곤 한다. 마치 무언가를 겪는 행위가 마치 물건을 써서 없애버리는 것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일인 양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연 경험은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 하는 질문이 든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먼저 '소비'라는 단어가 가진 본질적 의미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비'라는 말속에는 이미 '소멸', ‘사라짐’의 의미와 정서가 깊게 깔려 있다. 한자어 ‘소비(消費)’는 ‘없앨 소(消)’와 ‘쓸 비(費)’가 결합되어 말 그대로 써서 없앤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어의 'consume' 또한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con-(완전히)'와 'sumere(취하다)'가 결합되어 '완전히 써버리다', ‘완전히 소모하다’는 뜻을 지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비라는 개념에는 '어떤 것이 닳아 없어지는 행위'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소비는 언어적 기원부터 무언가를 잃거나 줄어드는 과정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우리가 소비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시간을 낭비했다', '재능을 허비했다', '인생을 소모했다'와 같이, 소비라는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때 주로 사용한다. 반면, 만약 소비의 결과가 만족스럽고 이로운 것이었다면, 우리는 '소비'라는 표현 대신 '생산'이나 '절감'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예컨대,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이 아닌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라고 말하고, 헛되이 쓴 재능이 아닌 “재능 기부의 시간을 가졌다”라고 표현한다. 언어 선택 자체가 결과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일 수 있으나, 인간의 주관적인 평가에 따라 긍정적 또는 부정적 의미를 띠게 되는 이중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경험의 소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단순히 겪고 사라지는 소비의 형태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남기는 생산적인 행위일까?

경험은 단순히 어떤 사건을 겪는 것을 넘어, 그 사건을 통해 얻은 인상과 깨달음이 내면화되는 복합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과 뇌과학은 이 경험이 우리의 인지 및 기억 체계에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한다. 특히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에 따르면, 인지 과정은 뇌뿐만 아니라 신체, 그리고 우리가 처한 환경이 모두 통합되어 이루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기억은 단순히 추상적인 정보의 집합체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운동 체계에 기반을 두고 형성되는 구체적인 흔적이다. 우리는 몸으로 직접 겪고 행동하며 세상을 이해한다. 일례로, 뜨거운 주전자를 만져본 경험은 '뜨겁다'는 추상적 개념을 실제 고통이라는 감각과 연결시킨다. 이처럼 경험은 신체적 행위에서 시작되지만, 그 경험을 '기억'으로 인식하고 저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뇌의 역할인 것이다.


신체와 뇌가 함께 작용하여 기억을 형성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신체 활동과 기억 강화다. 신체 활동은 해마를 자극하여 새로운 신경세포와 연결을 생성하고, 이는 기억을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기억으로 전환하는 과정인 '기억 강화'를 촉진한다. 꾸준한 운동이 학습 능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이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둘째, 신체 스키마와 감각 기억이다. 뇌는 '신체 스키마(schema)'라는 일종의 내부 지도를 유지한다. 이 지도는 우리의 신체가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파악하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를 효과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이 스키마를 바탕으로 사건을 경험하고 기억한다. 셋째,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이다. 이것은 숙련된 행동과 무의식적 습관을 담당하는 장기 기억의 한 유형이다. 흔히 “몸이 기억한다”는 표현은 바로 이 절차적 기억을 가리킨다. 이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운동 활동의 순서를 조정하는 뇌 영역들, 특히 소뇌(cerebellum)와 대뇌의 기저핵(basal ganglia)에 저장되는 이 기억은 우리가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기술을 체득하고 효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정리를 해보면,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나 행동을 통해 신체와 뇌가 상호작용하며 주관적인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기억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경험은 닳아 없어지는 '소비'가 되거나, 우리 안에 남아 가치를 더하는 '생산'이 되는 것이다.


'경험의 소비'가 지닌 가치는 단순히 개인의 내적 성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물질적 소유보다 경험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험적 소비'는 이러한 흐름을 대변한다. 사람들은 값비싼 명품 가방을 사는 대신, 그 돈으로 특별한 여행을 떠나거나, 전문적인 클래스를 수강하고,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 공유하는 데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는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뒷받침된다. 미국의 심리학 저널 'Psychological Science'에 게재된 한 연구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보다 경험을 살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혔다. (출처: ‘Doing makes you happier than owning – even before buying’)


왜 경험은 물질보다 더 큰 만족을 주는 것일까?


첫째, 사회적 연결의 기회다. 경험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진다. 여행, 공연 관람, 식사 등의 경험은 타인과의 공유를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반면, 물건의 소비는 대부분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 정체성 구축의 수단이다. 경험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겨"와 같은 문장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험은 물건처럼 쉽게 소유하고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 비교의 어려움이다. 물건은 그 가치를 너무나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저 사람의 차가 내 차보다 더 비싸고 좋다"와 같은 비교는 수치로 환산되어 쉽게 판단할 수 있어서 종종 불필요한 경쟁과 불행을 낳는다. 그러나 경험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어서 비교하기 어렵다. "그 사람의 여행 경험이 내 여행 경험보다 더 좋았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설령, 여행을 같이 간 경우라 하더라도 보고 느끼는 각자의 경험은 고유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적 소비에도 그림자는 존재한다. 때로는 '보여주기식 소비'로 변질되기도 한다. SNS에 올릴 사진 한 장을 위해 값비싼 경험을 좇거나, 남들이 하는 경험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또한, 모든 사람이 물질보다 경험을 통해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경험 소비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실용적이고 오래 지속되는 물건을 소유하는 '물질 소비'에서 더 큰 만족감을 얻는 경향이 있다. (출처: ‘Social Class Determines Whether Buying Experiences or Things Makes You Happier)이처럼 소비의 형태와 만족도는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출처: Lummi.ai ⓒ rena


이제 다시 '경험의 소비'가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다. 경험은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채우고 성장시키는 '생산'적인 행위다. 모든 경험은 소비된다. 경험 측면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안에 축적되어 하나의 지식, 지혜, 또는 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경험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고, 나쁜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물론, 모든 경험이 다 좋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간접 경험이라고 불리는 타인의 지식이나 지혜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간접 경험은 진정한 의미의 '체화'를 이루기 어렵다. 칸트가 주장한 '선험적 지식(a priori knowledge)'처럼, 우리는 경험 없이도 보편적인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불확실성과 변화가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적응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경험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거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험은 단순한 투자 대비 수익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실패한 경험, 비효율적인 경험 역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곧 미래의 더 나은 결정을 위한 지혜로 전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당장은 '소비'로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는 '생산'이 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경험의 소비는 단순히 돈을 쓰는 행위를 넘어,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고 성장시키는 능동적인 행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모든 경험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축적되어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 '경험의 소비'는 결국,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아서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역설적인 깨달음의 과정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경험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결과에만 집착하여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지 않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열매를 얻기 위한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씨를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경험의 소비는 또 다른 생산과 창조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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