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은 것을 증강시키며 이를 새로운 것으로 생성해 내는 법
유네스코는 리터러시를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이다. (Literacy is the ability to identify, understand, interpret, create, communicate and compute, using printed and written materials associated with varying contexts).”
(UNESCO, 2004)
문자뿐만 아니라 이미지, 영상 등의 매체 이해 및 활용능력을 포함한 경우를 리터러시라고 부를 것이다.
-『유튜브는 책을 삼킬 것인가? 삶을 위한 말귀, 문해력, 리터러시』, 김성우x엄기호 지음
AI가 보편화되면서, 정보를 검색하고 정리하는 데 쓰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어떤 질문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요즘이다.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여러 자료를 헤매던 과거의 모습에서, 이제는 어떤 질문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을지를 설계하는 모습으로 역할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더욱이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능력은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개인에게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 덕분에 한 사람이 여러 전문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시대, 즉 혼자서도 하나의 팀처럼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간 지성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다. 기계가 대부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혹자는 인간의 역할이 축소되고 결국에는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라 비관하기도 한다. 반면,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을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더욱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기회를 얻었다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이 거대한 전환의 한복판에서, AI와 맺어야 할 관계의 본질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개념은 바로 '리터러시(Literacy)'다. 우리가 흔히 '문해력'이라 번역하는 이 단어는 본래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의미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는 훨씬 더 넓은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서두에 언급한 문구의 저자가 언급하기를, 현대 사회의 리터러시는 단순히 텍스트를 해독하는 능력을 넘어, 이미지와 영상, 소리와 같은 다양한 매체에 담긴 정보를 이해하고,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며,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다면적인 능력을 포괄한다고 말한다. 21세기의 교양인이란, 소설책을 깊이 있게 읽는 능력과 더불어 복잡한 데이터 시각화 자료를 해석하고, 영상의 이면에 숨은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파악하며, 자신의 생각을 멀티미디어 형태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지점은,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이와 정확히 맞닿아 있는 개념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멀티모달리티(Multimodality)'다. 단순 텍스트라는 단일한 소통 창구에 의존했던 과거의 AI와 달리, 현대의 멀티모달 AI는 인간처럼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동시에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기능을 동시에 처리한다.) 인간의 능력이 리터러시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어 온 것처럼, AI의 기능 역시 멀티모달리티라는 이름으로 진화하며 인간의 다면적 소통 방식을 닮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확장된 능력인 '리터러시'와 AI의 진화된 기능인 '멀티모달리티'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언뜻 보기에 이 관계는 인간에게 다소 불리해 보일 수는 있다. AI가 데이터 처리, 정보 검색, 콘텐츠 생성과 같은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인간은 그저 몇 가지 지시를 내리거나 최종 결과물을 선택하는, 비교적 쉬운 역할만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도는 자칫 인간이 AI의 강력한 능력에 의존하여 지적으로 안주하는 '기생(Parasitism)'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인간이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려 노력하지 않고, AI가 떠먹여 주는 지식만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 관계의 본질은 기생이 아닌, 훨씬 더 고차원적인 '공생(Symbiosis)'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적절한 비유를 인류학자 애나 칭의 저서 『세계 끝의 버섯』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송이버섯은 인간이 통제하는 농장에서 재배되는 작물이 아니라, 산업화로 폐허가 된 숲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독립적인 생명체로 묘사된다. 인간은 버섯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버섯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이해하고, 그 성장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가장 적절한 시점에 수확하여 세상에 가치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AI와 맺어야 할 공생 관계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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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델을 기초로, 인간의 새로운 역할을 구체적으로 정의해 보면 어떨까 싶다. 농부가 어떤 밭에 어떤 씨앗을 심을지 결정하듯,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가치를 창출할지를 결정하는 '의도'를 설정한다. 이는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농부가 토양의 상태와 기후를 정밀하게 제어하여 최적의 생장 환경을 조성하듯, 우리는 AI에게 정확한 '맥락'을 제공하고 양질의 데이터를 선별하며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조건을 설계한다. 마지막으로, 농부가 수많은 버섯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별하여 수확하듯, 우리는 AI가 쏟아내는 무수한 결과물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그 안에 숨겨진 편향이나 오류를 걸러내며, 최종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비판적 판단'을 내린다. 이처럼 인간의 역할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AI의 강력한 생성 능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현되도록 전 과정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지적 활동이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할을 '데이터 채굴자(Data Miner)'에서 '데이터 생성자(Data Generator)'로 재정의하게 만든다. 채굴자는 이미 존재하는 유한한 자원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역할이지만, 이 역할은 머지않아 AI에 의해 완전히 자동화될 것이다. 반면 생성자인 인간은 AI가 가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최초의 질문, 독창적인 가설, 창의적인 맥락 자체를 '생성'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의 운동장을 설계하는 이 역할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 생성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인간의 리터러시와 AI의 기술이 맞물려 돌아가는 하나의 완성된 '인지 강화 루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각각 세상을 읽는 능력, 의도를 표현하는 능력,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이 리터러시에 포함된다. 그리고 AI의 기술 중에 하나인 RAG라는 기술은 AI가 사용자의 질문에 답변할 때, 자체 정보뿐만 아니라 외부의 방대한 지식 데이터베이스를 최신의 정보를 참조하여 답변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 Augmented Generation)' 기술을 말한다. 이 두 사이클은 다음과 같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먼저, 인간은 자신의 리터러시를 총동원하여 세상의 흐름과 문제의 본질을 '읽고(Read)', 이를 바탕으로 AI에게 던질 정교한 질문과 맥락을 '작성(Write)'한다. 이 잘 설계된 프롬프트는 AI에게 어떤 외부 정보를 '검색(Retrieve)'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단서가 된다. 그러면 AI는 이 단서를 바탕으로 가장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콘텍스트가 보강된 결과물을 '생성(Generate)'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판적 사고를 통해 그 가치와 한계를 '해석(Interpret)'한다. 그리고 이 해석의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이해와 통찰은 다시 세상을 더 깊이 '읽는(Read)' 과정으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더 수준 높은 다음 질문을 '작성(Write)'하는 자양분이 된다. 이 '쓰기 → 생성 → 해석 → 다시 쓰기'의 선순환이야말로 인간의 전략적 사고와 AI의 전술적 실행 능력이 결합된 최상의 협업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의 등장은 인간 지성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어쩌면 좀 더 희망적일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하는 '데이터 저장 장치'가 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우리는 AI라는 강력한 파트너와 함께 어떤 질문을 던져야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질문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 속에서, 과거 선택적 교양으로 여겨졌던 리터러시는 이제 AI라는 가장 강력한 도구를 운용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이자 필수적인 생존 역량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AI 시대의 농부'이자 '데이터 생성자'로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우리 시대의 새로운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각자에게 던져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과연 어떤 질문이 던져질 가치가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이 새로운 시대의 토양 위에 어떤 질문의 씨앗을 심어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