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백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팀이 필요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안을 혼자서 구상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심지어 그럴듯한 초안까지 작성해 내는 일들이 이제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LLM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의 창고가 아니라, 마치 의도를 가진 지적인 동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개인의 역량을 증폭시키면서, 우리는 바야흐로 한 사람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여러 연주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 놀라운 능력 앞에서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과연 이것은 인류가 오랜 시간 꿈꿔온 지적 해방의 서막인가, 아니면 우리의 고유한 가치가 희석되는 종말의 시작인가.
이러한 불안감은 역사 속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19세기 초,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수많은 방직공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으로 맞섰다. 그들의 눈에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침입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볼 때, 산업혁명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류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AI 혁명은 당시의 '근육 자동화'와는 차원이 다른 '인지의 자동화'라는 점에서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 여겨졌던 생각하는 능력마저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우리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가. 많은 이들이 기존 노동의 가치는 0에 수렴하고, AI와 관련된 새로운 노동의 가치만이 100으로 치솟는 극단적인 대체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빠진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함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치의 ‘소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전환’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치 30이라는 가치가 0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를 바꾸어 전혀 다른 모습의 30으로 재탄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전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는 바로 체스판 위에서 일어났다.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은 사건은 인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지성이 기계에 패배한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스파로프는 패배 이후 절망하는 대신,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프리스타일 체스’라는 새로운 경기를 제안했다. 이 경기에서는 인간 단독, AI 단독, 그리고 인간과 AI가 한 팀을 이룬 ‘켄타우로스(반인반수)’가 자유롭게 대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최고의 그랜드마스터도,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도 아닌, 숙련된 인간과 적절한 성능의 AI가 협력한 ‘켄타우로스’ 팀이 꾸준히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인간의 직관과 전략적 통찰력, 그리고 AI의 방대한 계산 능력과 패턴 인식 능력이 결합되었을 때, 각각의 능력을 합산한 것 이상의 시너지가 발생함을 증명한 것이다. 이 ‘켄타우로스’ 모델은 AI 시대에 인간 전문가의 역할이 어떻게 재정의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전문가는 더 이상 모든 정보를 암기하고 처리하는 ‘걸어 다니는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다. 오히려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능숙하게 활용하여 최적의 해답을 도출해 내는 ‘사고의 지휘자’로 거듭나는 것이다.
Pexles.com ⓒ 2018 Felix Mittermeier
자연계 역시 이러한 협력의 지혜를 이미 오래전부터 체득하고 있었다. 깊은 숲 속의 나무들은 저마다 홀로 서서 햇빛과 물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땅속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거대한 연결망, 즉 ‘균근망(Mycorrhizal Network)’이 존재한다. 이는 나무뿌리와 공생하는 곰팡이 균사체들의 네트워크로, 숲 전체를 거미줄처럼 엮고 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나무들은 서로 영양분과 물을 교환하고, 심지어 병충해의 위험 신호까지 전달한다. 늙고 큰 ‘어머니 나무’는 이 네트워크의 허브가 되어 어린 묘목들에게 탄소를 보내 성장을 돕는다. 여기서 균근망은 숲의 AI와 같다. 개별 나무가 할 수 없는 광범위한 자원의 분배와 정보의 교환을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숲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만약 나무들이 이 네트워크를 경쟁자로 여기고 파괴하려 했다면, 숲은 결코 지금처럼 울창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균근망은 나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더 ‘나무답게’ 성장하고 숲 전체가 번성할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을 증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간과 AI의 관계 역시 이러한 공생의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 AI는 우리의 지적 능력을 대체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인간다운 본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적 균근망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배의 비유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는 이제 AI라는 최첨단 자동화 선박에 올라탄 선원들과 같다. 이 배의 강력한 엔진과 정교한 항법 시스템이 바로 AI다. 그렇다면 이 배 위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먼저, ‘선장’의 역할을 하는 전략적 전문가가 있다. 선장은 엔진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거나 직접 키를 잡을 필요는 없다. 그의 핵심 역량은 날씨와 해류를 읽고, 별자리를 보며 궁극적인 목적지, 즉 ‘왜’ 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이는 시장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윤리적 판단을 내리며, 조직의 비전을 설정하는 리더의 역할과 같다. 다음으로, ‘조타수’의 역할을 하는 기술적 전문가가 있다. 이들은 선장의 추상적인 지시를 배가 알아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키를 조작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의 프롬프트 엔지니어나 AI 통합 전문가처럼, 인간의 비전과 AI의 실행 사이를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소위 ‘비전문가’들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그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승객이 아니다. 이들은 배의 갑판 위에서 망을 보며 자동화된 센서가 놓칠 수 있는 위험을 찾아내고, 배의 유지보수에 참여하며 현실 세계의 피드백을 제공하는 능동적인 ‘선원’이 된다. AI의 결과물을 검증하고, 인간적인 공감이 필요한 소통을 담당하며, 시스템 전체가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돕는 필수적인 존재다. 더 나아가, 이 배는 너무나 강력하고 조종하기 쉬워서, 이제는 모든 승객이 자신만의 작은 여정을 위한 ‘선장’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과거에는 전문가 집단만이 누릴 수 있었던 막강한 분석력과 실행력을, 이제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활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술이 가져온 진정한 능력의 민주화다.
결국,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AI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적인 영역으로 고양되고 있다. 우리는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어떻게’의 문제로부터 해방되어, 더욱 근본적인 ‘왜’의 질문에 집중할 기회를 얻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동안, 우리는 그 패턴에 의미를 부여하고, 윤리적 잣대를 적용하며, 인간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 기계가 정교한 계산을 하는 동안, 우리는 따뜻한 연결을 만들고, 기계가 논리적인 답변을 생성하는 동안, 우리는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기술 혁명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이 기계처럼 더 효율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 덕분에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 새로운 힘을 가지고 어떻게 더 깊이 있고, 더 창의적이며,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삶이라는 배의 선장이 되어, 이 지적인 대항해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목적지를 설정하고 탐험해 나갈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