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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은 적정한가

공정한 보상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by 닥터브룩스

이제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는 말은 연말 평가도 기다리고 있는 뜻일 것이다. 연말이 되면 ‘올 한 해는 만족스러웠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후, 이어지는 물음이 사실 ‘그래서, 보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런 질문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성과급을 기대한다. 그런 기대감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주머니의 경험으로 채워지는 결말은 누구나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아니 확인할 수 없는 소문 한마디에 순식간에 배신감으로 바뀌는 경험 또한 낯설지 않다. 올해는 꽤 성과를 냈다고 믿었던 자신이 아니라 동료가 나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 내 손에 쥐어진 보상의 절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쉬이 무너져 내린다.

대체 왜 우리는 손에 쥔 구체적인 보상보다, 알 수 없는 타인의 보상에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일까?

확인되지 않은 비밀이 어떻게 이토록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감정을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현상은 단순히 시기심이나 금전적 욕심의 문제여서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조직과 맺는 관계의 본질, 즉 회사가 작동하는 ‘계산의 세계’와 개인이 살아가는 ‘감정의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균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업에게 보상 제도는 본질적으로 정교한 도구다. 인재를 확보하고 동기를 부여하며, 궁극적으로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하게 설계된 계산의 산물이다. 직원의 만족감이나 행복, 충성심 같은 가치들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라기보다는, 더 나은 경영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핵심 유인 변수로서 관리된다. 마치 농부가 최상의 수확을 위해 토양의 성분과 일조량을 정확히 계산하여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기업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인간의 감정을 계산된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인다.


반면, 개인에게 일은 삶의 정체성과 자존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적 영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회사에 시간과 기술이라는 계산 가능한 자원만 투입하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열정과 창의성,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소속감 같은 감정적 에너지를 함께 쏟아붓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깊은 투자에 대해 감정적 보답을 기대한다. 내가 조직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받고 있으며, 자신의 기여가 금전적으로 공정하게 인정받고 평가받고 있다는 믿음. 바로 이 지점에서 회사의 계산된 도구는 개인의 감정적 기대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진 ‘블랙박스’ 안에서 보상이 결정될 때, 개인은 결과의 불공정함을 넘어, 나라는 존재를 평가하는 과정을 포함한 전부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계산의 세계가 감정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이 둘을 잇는 다리도 곧 무너져 버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현대 사회의 직장인만이 느끼는 특수한 심리가 아닐 것이다. 저명한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의 카푸친 원숭이 실험은 이 감정이 얼마나 깊고 본능적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실험은 간단하다. 연구자는 두 원숭이에게 똑같이 조약돌을 가져오는 과업을 시킨 뒤, 한 마리에게는 보상으로 오이를, 다른 한 마리에게는 훨씬 맛있는 포도를 준다. 처음 몇 번은 오이를 받아 들던 원숭이는 옆 동료가 포도를 받는 것을 본 순간, 자신의 보상인 오이를 연구자에게 집어던지며 격렬하게 분노한다. 이 원숭이의 분노는 단순히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만약 혼자 있었다면 오이를 만족스럽게 먹었을 것이다. 그의 분노는 똑같은 노동에 대해 비교당한 차별적인 보상을 목격한 데서 오는 ‘불공정함’에 대한 원초적인 반발이다. ‘왜’ 이 원숭이는 분노했을까? 자신의 노력이 동료보다 낮게 평가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것이 중요했을까? 집단 내에서 통용되던 암묵적인 규칙, 즉 공정한 분배의 원칙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정성에 대한 갈망은 생존과 협력을 위해 진화해 온 깊은 본능이다. 우리가 불투명한 보상 시스템 아래서 느끼는 억울함은, 단순히 금액의 차이를 넘어, 내가 속한 공동체의 근본적인 신뢰가 깨졌다는 본능적 신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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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xels.com ⓒ 2018 Andre Mouton


그렇다면 계산의 세계와 감정의 세계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부 혁신적인 기업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투명성의 길을 선택한다. 넷플릭스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업계 최고 대우’라는 원칙을 내세우지만, 핵심은 단순히 많은 돈을 주는 데 있지 않다. 그들은 보상 철학 자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한다. 예컨대 개인의 성과에 따라 보상하기 위해 집단 보너스 제도를 없애고, ‘키퍼 테스트(Keeper Test)’, 즉 ‘만약 이 직원이 경쟁사로 떠난다고 했을 때, 우리가 그를 붙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개인의 가치를 판단한다고 솔직하게 밝힌다. 이러한 방식은 누군가에게는 비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적어도 보상이 결정되는 ‘과정’의 논리와 철학을 모든 구성원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는 불확실한 미지의 것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알려진 미지의 것’으로 바꾸려는 노력이다. 비밀이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회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명확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신뢰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결국 우리는 보상이라는 제도를 통해 하나의 중요한 통찰에 다다른다. 회사의 계산된 시스템은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키(rudder)’이고, 직원의 감정과 동기는 배를 움직이는 ‘바람’이다. 아무리 정교한 키와 유능한 조종사가 있어도,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보상의 비밀주의는 짙은 안갯속에서 항해하는 것과 같다. 키가 어디로 향하는지 보이지 않고, 선장의 결정을 믿을 수 없을 때, 동기라는 바람은 서서히 멎어버린다. 배는 그 자리에 좌초되고 만다. 그렇기에 회사가 직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보상은 돈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신뢰’다. 당신의 노력을 평가하는 우리의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며, 당신의 기여를 존중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


한 줄로 표현하면, ‘보상은 곧 신뢰다’.


우리가 연말에 느끼는 그 씁쓸한 감정의 근원은 결국 숫자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단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보상을 주고받는다. 칭찬 한마디, 작은 감사의 표현, 따뜻한 격려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 보상들을 나누고 있는가? 자신만의 블랙박스 안에서 계산적으로 저울질하며, 보이지 않는 서운함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눈에 보이는 선물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인정과 감사의 과정에 어떤 불순함도 없다는 투명한 믿음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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