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사고는 인간 고유 능력이다

이제 통섭이 필요한 시간

by 닥터브룩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정보의 파도 속에서 무언가를 판단하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떤 정보는 받아들이고 어떤 정보는 밀어내며, 어떤 사람과는 가까워지고 어떤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이런 일상적인 행위들이 그저 습관의 반복일까? 아니면 우리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의 발현일까? 특히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활동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 있다고 이야기되는 지금, 이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질문 앞에서 두 가지 핵심 능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비판적 사고'와 '관계 형성'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고유한 의미를 창조해내는 핵심 기제일 것이다.




먼저 비판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보자. 흔히 '비판적'이라고 하면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진정한 비판적 사고의 본질은 그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시작은 아주 겸손하고도 용기 있는 가정, 즉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여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눈앞의 현상이나 주어진 정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관성에 저항한다. 이 저항이야말로 인간 사유의 첫걸음이다. "정말 그럴까?", "왜 그래야만 하지?",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이처럼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연쇄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단순히 오류를 찾아내는 소극적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기존의 견고한 틀을 깨고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려는 능동적인 지적 활동이다.


이러한 질문의 연속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곧 창의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 '현재의 사실(What is)'에 균열을 내고, 그 틈새로 '만약에(What if)'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견고한 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할 때, 비로소 그 벽을 넘어설 새로운 문을 고안해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판적 사고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라, 더 나은 구축을 위한 건설적인 해체 작업이다.


여기서 인공지능의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생긴다. AI 역시 논리적 오류를 찾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판적 사고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는 말은 틀린 것일까? 나는 그 '동기'와 '맥락'에서 차이가 발생한다고 본다. AI는 주어진 매개변수와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답을 시뮬레이션한다. AI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진정한 회의나, 답을 찾고자 하는 절실한 '의도'가 없다. 반면 인간의 비판적 사고는 살아온 경험, 즉 개인의 역사와 감정,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라는 복합적인 '맥락'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우리는 단순히 정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의 신념이나 경험과 충돌하기 때문에, 혹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의문을 제기한다. AI는 정교한 패턴 매칭을 하지만, 인간은 고유한 의도를 가지고 의미를 탐색한다.


이러한 사유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두 번째 능력인 '관계 형성'으로 이어진다. 비판적 사고가 개별적이고 내향적인 지적 활동처럼 보인다면, 관계 형성은 외향적이고 연결적인 활동이다. 우리는 흔히 관계 형성이라고 하면 인간 사이의 사회적 연결, 즉 네트워킹이나 공감을 떠올린다. 물론 이는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이다. 하지만 이 개념을 조금 더 확장해, '인지적 영역'으로 가져와 볼 필요가 있다. 즉, 인간 대 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대 아이디어', '데이터 대 데이터' 간의 관계를 맺어주는 능력 말이다.


이 관점에서 '관계 형성'은 방대한 데이터를 지식으로 바꾸는 핵심 동력이다. 이는 마치 수많은 부품을 정교하게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기계를 완성하는 것과 같다. 이 비유는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개별 데이터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고객 ID 452'와 '구매: 사과'라는 두 개의 데이터 조각은 고립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둘 사이에 '452번 고객이 사과를 샀다'는 '관계'를 정의하는 순간, 비로소 '정보'가 탄생한다. 나아가 이 정보가 '지난주에도 같은 시간에 사과를 샀다'는 다른 정보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패턴' 즉 '지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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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통섭(Consilience)'의 본질이다. 과거의 전문성이 하나의 우물을 깊게 파는 'I자형' 인재를 요구했다면, 현대 사회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엮어내는 힘, 즉 'T자형' 인재의 통섭적 능력을 요구한다. 여기서 T의 가로축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인지적 관계 형성' 능력이다. 이는 분절된 지식의 섬들을 연결해 거대한 대륙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 능력은 완전히 다른 맥락에 존재하는 개념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낸다.


이러한 통섭적 능력의 위대한 사례로 찰스 다윈을 들 수 있다. 다윈은 비판적 사고의 대가였다. 그는 당대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던 '종의 불변성'에 대해 "아닐 수도 있다"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인지적 관계 형성의 달인이었다. 그는 비글호 항해에서 관찰한 갈라파고스 핀치의 부리 모양(생물학)을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경제학/사회학) 및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지질학/심층 시간)와 연결했다. 이질적인 분야의 지식들 사이에 아무도 보지 못했던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그는 '자연선택'이라는 혁명적인 이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비판적 사고가 낡은 것을 해체하고, 관계 형성이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 완벽한 협업의 사례다.


결국 비판적 사고와 관계 형성은 분리된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지적 활동을 구성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비판적 사고가 '왜?'라는 질문을 통해 기존의 연결을 끊어내는 힘이라면, 관계 형성은 '만약에'라는 상상을 통해 새로운 연결을 엮어내는 힘이다. AI가 우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무엇(What)'에 대한 답을 내놓을수록, 우리 인간의 역할은 더욱 명확해진다. 우리의 역할은 AI가 답할 수 없는 '왜(Why)'를 묻는 것이며, AI가 스스로 설정할 수 없는 '의미 있는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비판적 사고). 동시에, 그 분절된 정보들 속에서 자신만의 맥락과 통찰을 엮어내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관계 형성). 미래는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강력한 도구로 삼아 인간 고유의 능력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내는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들에 대해 어떤 "아닐 수도 있다"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가진 지식의 조각들을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해보고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인간적인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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