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을 자르고 배꼽을 남기며
모니터 가득 채워진 자료의 수정사항들...
어떤 것은 핵심 기능에 대한 긴급 업데이트였고, 어떤 것은 설정 메뉴 구석에 박혀 있을 법한 사소한 UX 디자인 변경사항에 대한 검토였으며, 또 어떤 것은 경쟁사의 갑작스러운 업데이트에 대응하기 위한, 출처가 불분명한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이 모든 업무가 '중요함'이라는 단일한 층위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우리는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 그리고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소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매번 같은 무게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일까. 왜 우리는 종종 탯줄을 잘라내야 할 칼로 배꼽을 다듬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가.
이런 질문은 단순히 업무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고 기획하는 사고 체계의 근본적인 오류를 건드리게 된다. 복잡하게 얽힌 기획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잠시 시선을 생물학의 냉정한 세계로 돌려보고자 한다.
진화 생물학은 가장 냉혹하고 효율적인 편집자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미학적 완성도나 대칭의 아름다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적 함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의 몸을 이 진화의 관점에서 해부해보면, 기획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 가지 뚜렷한 층위의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적응(Adaptation)'이다. 탯줄이 대표적이다. 이는 태아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배출한다는 명확하고도 절박한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교하게 발달한 특성이다.
둘째는 '부산물(By-product)'이다. 배꼽이 이에 해당한다. 배꼽은 그 자체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탯줄이라는 적응이 존재했기에 필연적으로 남겨진 흉터이자 구조적 결과물이다.
셋째는 '잡음(Noise)'이다. 사람마다 제각각인 배꼽의 모양이나 피부의 미세한 주름처럼, 엔트로피와 우연한 돌연변이가 만들어낸 무작위적 변이다.
흥미로운 점은 비즈니스를 설계하고 프로덕트를 기획하는 과정이 이 진화의 메커니즘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역시 제품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능을 만들고(적응),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딸려오는 구조적 찌꺼기들을 떠안으며(부산물), 예측 불가능한 시장의 변동성(잡음)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기획의 실패는 대부분 이 세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종종 배꼽을 탯줄로 착각해 그것을 닦고 조이는 데 과도한 에너지를 쏟거나, 의미 없는 잡음 속에서 거창한 패턴을 찾아내려 애쓴다. 더 나은 기획, 아니 생존 가능한 기획을 위해서는 우리가 다루는 과업들을 단순히 우선순위(Priority)가 아니라, 그것의 존재 이유와 통제 가능성(Controllability)에 따라 다시 분류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정의해야 할 것은 '적응'의 영역이다. 이는 기획자가 '완전 통제(Fully Controllable)'할 수 있는 영역이자, 의도(Intent)의 세계다. 비즈니스에서 이것은 핵심 가치 제안(Core Value Proposition)에 해당한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이나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이에 속한다. 탯줄이 태아의 생존을 책임지듯, 이 기능들은 사용자가 가진 구체적인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곳은 목적 지향적(Teleological)인 공간이다. 기획자는 이곳에서 전지전능한 설계자가 된다. 스펙을 정의하고, 논리를 세우며, 경험의 흐름을 주도한다. 따라서 적응의 영역에서의 전략은 '최적화(Optimization)'와 '혁신'이어야 한다. 이곳에 투입된 리소스는 생존 확률을 직접적으로 높인다. 만약 이 핵심 기능에 집착하고 있지 않다면, 기획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겉치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떤 적응도 진공 상태에서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필연적으로 그림자가 따른다. 여기서 '부산물'의 영역, 즉 '조건부 통제(Conditionally Controllable)'의 영역이 등장한다. 예컨대 '개인화 서비스(적응)'를 제공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로그인 화면'과 '계정 관리 프로세스'라는 부산물이 따라온다. 그 어떤 사용자도 아침에 눈을 뜨며 "아, 오늘은 정말 로그인이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로그인을 '견뎌낼' 뿐이다. 디지털 프로덕트에서 로그인 화면은 배꼽이다. 그것은 아키텍처가 남긴 흉터이자, 핵심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구조적 비용이다.
많은 조직이 범하는 치명적인 오류는 이 부산물을 마치 적응인 것처럼 대우하는 데서 비롯된다. 설정 메뉴의 깊이나 이용 약관 페이지의 디자인을 두고 몇 시간씩 격론을 벌이는 회의를 수없이 목격했다. 하지만 부산물은 모체가 되는 적응이 존재하는 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배꼽을 없애겠다고 복부를 도려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산물은 '혁신'의 대상이 아니라 '완화(Mitigation)'의 대상이다. 우리의 목표는 배꼽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자 눈에 띄지 않도록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사용자가 느끼는 마찰(Friction)을 최소화하고, 복잡성을 숨겨야 한다. 부산물에 들어가는 노력이 적응에 들어가는 노력을 초과하는 순간, 그 프로젝트는 주객전도된 실패로 향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잡음'의 영역, 즉 '통제 불가능(Uncontrollable)'한 세계가 있다. 진화에서 잡음이 무작위 돌연변이라면, 비즈니스에서 잡음은 시장의 변동성, 갑작스러운 바이럴, 혹은 기획 의도와 전혀 다르게 제품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기이한 행동들이다. 기획자가 빠지기 쉬운 가장 위험한 함정은 이 잡음에서 신호(Signal)를 읽어내려는 시도다. 우연히 발생한 트래픽의 급증을 필연적인 성장의 신호로 오독하고,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전략을 수정한다. 이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오만이다.
이러한 태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이 보여준 '화물 숭배(Cargo Cult)'와 닮아 있다. 미군이 섬에 들어와 활주로(적응)를 닦고 관제탑을 세우자 비행기가 물자를 싣고 오는 것을 본 원주민들은,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떠난 후에도 나무로 모형 비행기와 관제탑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그들은 기능적 인과관계(적응)를 이해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현상(잡음과 부산물)을 흉내 냄으로써 결과를 통제하려 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사의 UI가 바뀌면 그 근본적인 전략(적응)을 분석하기보다 표면적인 디자인(잡음)을 따라 하느라 급급할 때가 많다. 이는 나무로 활주로를 만드는 일이다. 잡음은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지, 그것을 설계하려 들어선 안 된다. 잡음의 영역에서 필요한 전략은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도록 완충지대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결국 탁월한 기획이란 이 세 가지 층위를 얼마나 냉철하게 구분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통제 가능한 '적응'에 창의성의 총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가 미덕이다. 반면 통제할 수 없으나 관리해야 하는 '부산물'은 철저히 단순화하여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곳에서는 효율성이 미덕이다. 그리고 통제 불가능한 '잡음'은 겸허히 받아들이되, 그것에 휘둘려 배를 돌리지 말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단단한 중심이 미덕이다.
지금 업무 리스트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 지금 씨름하고 있는 그 문제는 생명을 공급하는 탯줄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남겨진 배꼽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운'을 기획하려는 헛된 시도에서 벗어나 '생존'을 설계하는 단단한 기획자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배꼽을 닦는 일을 멈추고, 탯줄을 튼튼히 하는 일에 집중하자. 그것이 불확실한 야생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