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프로그래머

주경야편 晝耕夜編: 낮에는 경작을 하고 밤에는 코드를 짜는 것

by 닥터브룩스

일본에는 전설이라 불리는 프로그래머가 있었다. 그는 낮에는 푸른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고, 밤이나 쉬는 날에는 집으로 돌아와 묵묵히 코드를 써 내려갔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도 그것을 생업으로 삼지 않고 오직 취미의 영역에 가두어 둔 그의 삶은 우리에게 기묘한 경외감을 주었다.




흔히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곤 하지만, 막상 그 꿈을 이룬 이들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짙은 실망감이 배어 있곤 한다. 왜 가장 사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비로소 그 일을 미워하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 해답은 전설이 된 프로그래머가 그토록 완고하게 지켜온 업과 취미의 경계 속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순적인 감정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를 넘어, 놀이가 자본으로 치환될 때 발생하는 구조적 변형에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심리학적 기제는 과잉 정당화 효과(Overjustification Effect)이다. 인간은 어떤 활동을 그 자체로 즐거워서 할 때 가장 높은 몰입도와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활동의 대가로 외부적인 보상, 즉 돈이나 평판이 주어지기 시작하면 뇌는 행동의 원인을 내부의 즐거움이 아닌 외부의 보상에서 찾기 시작한다. 즐거움이라는 내적 동기가 보상이라는 외적 동기에 의해 잠식당하게 되는 것이다.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노력의 성소였던 공간에 결과의 경제가 침입한다. 취미의 세계에서는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 그 자체가 보상이지만, 직업의 세계에서 노력은 최소화해야 할 비용일 뿐이다. 시장은 내가 코드를 짜며 느꼈던 지적 희열이나 밤을 새우며 고민했던 과정의 우아함에 관심이 없다. 오직 그 결과물이 내놓는 효용과 가치에만 지불할 뿐이다. 가치의 단위가 과정에서 결과로 이동하는 이 지점이 바로 열정이 실망으로 변하는 변곡점이자, 분기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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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레퍼(Lepper)와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보상을 약속하고 그림을 그리게 했더니, 보상이 사라진 이후에는 아이들이 이전처럼 자발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반면 아무런 보상 없이 그림을 그렸던 아이들은 여전히 그 행위 자체를 즐겼다. 외부의 정당화가 내면의 순수한 기쁨을 지워버린 것이다. 취미가 직업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내가 통제하던 자율성을 시장의 논리에 내어주는 것과 같다. 언제든 실패할 자유, 느리게 갈 자유, 그리고 아무런 쓸모없는 것을 만들 자유가 사라지고, 대신 마감 기한과 고객의 요구, 그리고 효율성이라는 엄격한 잣대가 들어선다.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가 어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자신의 프로그래밍이 과잉 정당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물고기를 잡아 밥벌이를 해결함으로써, 자신의 코딩을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은 순수한 유희의 공간으로 남겨둘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추측만 할 뿐이다.)


구조적 관점에서 볼 때, 노력 중심 활동과 결과 중심 활동은 서로 다른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평행우주에 가깝다. 노력 중심 활동의 핵심은 폐쇄형 피드백 루프(Closed Feedback Loop)에 있다. 여기서의 에너지는 행위자 내부에서 발생하여 다시 행위자에게로 회수된다. 취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노력은 그 과정 자체가 보상이 되는 자가발전 시스템이다. 반면 결과 중심 활동은 개방형 가치 교환 시스템(Open Value Exchange System)의 지배를 받는다. 여기서는 행위자의 주관적 만족보다 타인의 객관적 평가와 효용성이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 직업의 세계에서 노력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으로 간주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가장 훌륭한 결과물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용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 보다 무엇을 내놓았는가에 그 가치의 척도가 매겨진다. 이는 필연적으로 행위자의 소외를 불러온다. 내가 만든 무언가가 세상에 나와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이 된다.


이 두 구조의 결정적인 차이는 엔트로피의 처리 방식에서 나타난다. 노력 중심의 활동은 높은 엔트로피를 허용한다. 무질서하고, 방황하며, 정제되지 않은 과정들이 모두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포용된다. 미켈란젤로의 노예(Slaves) 연작과 같은 논 피니토(Non Finito, 미완성)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거친 돌 속에 갇힌 형상이 채 빠져나오지 못한 그 상태는, 완성된 결과물보다 제작 과정의 격렬한 투쟁과 노력을 더 생생하게 증언한다. 만약 미켈란젤로가 현대의 외주 업체 직원으로서 이 작품들을 제출했다면, 그는 아마도 계약 위반으로 제소당했을 것이다. 프로의 세계, 즉 결과 중심의 구조는 엔트로피를 최소화하고 질서를 극대화하여 예측 가능한 품질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창작자의 고뇌 섞인 미완성을 예술적 가치로 보아주지 않고, 불량품으로 판정한다. 결과가 형편없더라도 과정이 즐거우면 그만인 취미와 달리, 직업은 과정이 엉망이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값진 것이 된다는 냉혹한 진실은 여기서 기인한다.


또한, 이러한 경계의 유지를 인지적 분리라는 생존 전략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의 세계에서는 동물들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거나 사냥을 하는 행위를 놀이를 통해 연습한다. 이 놀이가 중요한 이유는 실제 상황에서의 치명적인 결과 없이도 기술을 연마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어부이자 프로그래머인 그에게 낚시는 물리적 생존을 책임지는 실제 사냥이고, 프로그래밍은 지적 자아를 실현하는 놀이이다. 이 두 영역이 명확히 분리될 때, 뇌는 한 영역에서의 스트레스를 다른 영역의 자극으로 해소하는 능동적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순간, 삶에서 이 안전한 놀이터는 소멸한다. 안식처가 전쟁터로 변하고 나면 더 이상 도망칠 곳도, 회복할 곳도 잃게 된다. 취미가 직업이 되었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어쩌면 내 마음의 유일한 도피처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건축가와 꿀벌의 비유는 이 구조적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꿀벌은 본능에 따라 완벽한 육각형 집을 짓지만, 이는 결과 중심적인 생존 본능의 산물이다. 반면 형편없는 건축가라 할지라도 그는 집을 짓기 전 머릿속으로 먼저 설계를 한다. 이 설계의 과정, 즉 상상하고 고민하는 노력의 단계가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이다. 취미는 건축가로서 머릿속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해 보는 순수한 실험장이지만, 직업은 종종 효율적으로 집만 짓는 꿀벌의 위치로 되돌려 놓는다. 결과물이 곧 생존과 직결되는 순간, 실패할지도 모르는 새로운 설계도 대신 검증된 기존의 방식만을 고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창의적 고갈을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다.


결국 전설의 프로그래머가 경계를 유지하는 힘은 영혼의 어떤 부분은 절대 팔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에서 나온다. 프로 정신에 입각하여 결과물로 값을 증명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그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인간의 자세이며, 급여가 주는 정당한 품격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력만이 유일한 화폐가 되는 영토를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 결과가 형편없더라도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모든 열정을 커리어로 연결하려 애쓰지 말자. 대신, 가장 아끼는 활동을 최대한 비생산적인 상태로 남겨둘 수 있는 지혜와 그런 의지가 필요하다. 그럴 때만이 우리 자신의 창의성은 노동의 도구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마르지 않는 샘으로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삶은 위태롭다. 오직 결과만을 쫓는 삶은 성취의 순간 뒤에 찾아오는 허무를 견디지 못하고, 오직 노력의 즐거움에만 취해 있는 삶은 현실의 파고를 넘지 못한다. 굶어 죽을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다.


"나는 지금 내 노력에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가,
아니면 내 존재의 확장을 위해 기꺼이 땀 흘리고 있는가."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실망감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열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그 활동의 구조가 나를 위한 것에서 남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한다. 해결책은 다시 그 일의 일부를 비생산적인 노력의 영역으로 되돌려 놓거나, 혹은 전혀 다른 새로운 노력의 영토를 개척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최고의 미덕이 된 시대에, 아무런 결과물 없이도 오직 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축복이다. 당신만의 낚시터는 어디인가. 그곳에서 당신은 결과의 압박 없이 온전히 당신 자신의 노력과 마주하고 있는가. 이 경계를 지켜내는 힘이야말로 우리를 소모적인 노동으로부터 구원하고, 어쩌면 전설적인 창조자로 거듭나게 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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