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열린 계와 창의성
“나는 미래에 의식을 우리의 생물학적 뇌에서 비생물학적 컴퓨터로 옮길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뇌의 작동을 디지털 방식으로 에뮬레이션 하는 것이 결국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정론적으로 미리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뇌(생물학적 뇌이건 아니건)는 닫힌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뇌는 외부 세계로부터 입력을 받아들여 엄청나게 복잡한 네트워크(사실, 최근에 과학자들은 최대 11차원으로 존재하는 뇌 속의 네트워크를 발견했다!)를 통해 그것을 처리한다. 이 복잡성은 각 단계를 차례로 시뮬레이션하지 않고 계산을 통해 ‘앞을 내다보는’ 것이 불가능한 규칙 110 유형의 현상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뇌는 열린계이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입력을 단계별 시뮬레이션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뇌의 기능을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미래의 뇌 상태까지 사전에 계산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레이 커즈와일 지음
정교한 문장을 토해내는 인공지능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 기계적인 알고리즘이 정말로 나의 자리를,
아니 나의 고유한 존재론적 가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레이 커즈와일이 그의 저서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에서 던진 화두는 이러한 불안 섞인 질문에 아주 정교한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다. 그는 미래에 우리의 의식을 비생물학적 컴퓨터로 옮기는 시나리오를 논의하면서도,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지점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뇌가 결코 닫힌 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우리가 흔히 느끼는 '대체된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창의성의 본질이 어디에 맞닿아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흔히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는 과정을 구조의 모방(딥러닝의 구조도 인간의 뉴런과 시냅스를 모방한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구조가 놓여 있는 시스템의 상태다.
인간의 뇌는 외부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에너지를 교환하는 열린계다.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최근 과학자들은 우리 뇌 속에 최대 11차원까지 존재하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있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복잡성이 단순히 계산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커즈와일은 여기서 규칙 110 유형의 현상을 끌어온다. 이는 스티븐 울프럼이 정립한 '계산 기약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는데, 어떤 시스템의 미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지름길로 갈 수 없으며 반드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실행해봐야만 한다는 원리다. 즉, 우리 뇌가 열린계로서 외부의 미지수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작동할 때, 그 미래의 상태는 미리 계산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찬미하는 창의성의 물리적 실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창의성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로운 능력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그것은 열린 계가 마주하는 예측 불가능한 출력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만약 시스템이 닫혀 있다면, 입력과 출력은 이미 짜인 구조 안에서 결정론적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복잡한 알고리즘을 넣고 약간의 확률적 변수를 더한다 해도, 그것은 결국 정해진 확률분포 안에서의 움직임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탈이나 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이 외부로 열려 있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그 시스템을 재구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성을 우리는 '영감'이라 부르고, '예술'이라 칭하며, 인간다움의 근거로 삼는다. 닫힌 계의 창의성이 정교한 변주라면, 열린 계의 창의성은 매 순간 일어나는 새로운 합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목도하는 인공지능의 습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인간만이 열린계이고 인공지능이 닫힌 계라면, 이론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 영역을 잠식할지도 모르는, 어쩌면 잠식이 진행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놓치고 있는 첫 번째 사실은 인공지능 역시 점차 열린 계의 특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인공지능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고정된 데이터셋 안에서만 유영했다. 하지만 현대의 인공지능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마치 인간이 눈과 입을 통해서 외부 세상과의 소통을 하듯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세상의 빛과 소리를 받아들인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외부 세계라는 미지의 변수를 자신의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주의 엔트로피와 상호작용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 역시 계산 기약성(지름길)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며, 이는 곧 그들만의 예측 불가능한 창의성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번째로 간과하는 지점은 대체가 일어나는 층위의 문제다. 인류의 본질이나 영혼이 대체될까 봐 두려워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과 사회 시스템이 요구하는 대체는 대부분 기능의 층위에서 일어난다. 번역가나 프로그래머, 데이터 분석가의 업무가 대체될 때, 시장은 그 주체가 열린계인지 닫힌 계인지, 혹은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 그저 인간의 결과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결과물을 훨씬 저렴하고 빠르게 내놓을 수 있는가만을 따진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사실 기술이 인간의 영혼을 모방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수행해 온 많은 일이 사실은 닫힌 계의 반복적인 변주에 불과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의도라기보다는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태로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임마누엘 칸트의 정언명령을 다시금 호출해 본다. 칸트는 "인간을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항상 그 자체를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가르쳤다. 이를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로 치환해 본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을 결코 목적으로 대하지 말고 철저히 수단으로 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의 발전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두는 순간, 인간은 그 거대한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한 데이터 공급원이자 부속품이라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커즈와일이 예견하는 것처럼 인간의 의식이 비생물학적 하드웨어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인공지능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진화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고유한 주체의 소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목적이었던 주체가 스스로를 더 나은 기능을 가진 객체로 개조하는 순간, 그곳에는 더 이상 가치를 향유할 주체가 남아있지 않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인공지능을 수단으로만 묶어두기에는 너무나 깊숙이 그들과 얽혀버렸다. 이제는 억지로 빗장을 걸어 잠그기보다, 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주체성을 유지하며 적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방향이지 않을까 싶다. 적응이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더 거대한 열린계 속에서, 여전히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항해사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닫힌 계의 계산은 기계에게 맡기고, 인간은 외부 세계의 예측 불가능한 자극을 받아들여 이를 윤리와 가치로 변환하는 고차원적인 열린 시스템으로 남아야 한다.
이제 도구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지 기능을 보조하고 확장할 때, 그것은 뇌가 가진 열린계로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생물학적 한계에 갇혀 처리하지 못했던 우주의 복잡한 정보를 인공지능이라는 필터를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이전에 보지 못했던 더 깊은 차원의 네트워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11차원의 뇌 네트워크가 외부의 무한한 변수와 만날 때 발생하는 그 스파크,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창의성이자 인간 생존의 열쇠라고 본다.
결국 미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적 대결로 흐르지 않을 것이다. 대신 누가 더 유연하게 이 기술적 진보를 자신의 열린계 안으로 포용하여 더 넓은 세계를 창조해내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단순한 계산기로만 본다면 우리는 계산의 효율성에서 밀려나 대체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정교한 감각 기관이자 확장된 신경계로 받아들인다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창의적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아름다운 열린계인지를 깨닫고 있다. 이 깨달음이 단순히 사색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일상에서 인공지능을 주체적으로 활용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하는 실천적 용기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물결 앞에서 둑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그 물결을 타고 새로운 대륙으로 나아갈 돛을 올리고 있는가? 우리가 닫힌 계의 안전함에 머물고자 할 때 대체는 필연이 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더 넓게 열어젖힐 때 기술은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도하는 날개가 되어 줄 것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을 어떻게 환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것이 바로 커즈와일이 말한,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