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사이, 직장 동료사이 그리고...
인생을 살다 보면 고민거리 1순위는 세대에 따라
학생들은 학업문제, 직장인들은 직장 내에서 관계정립일 것이다.
(당연히 돈 문제는 시대를 관통하기 때문에 제외하기로 하고...)
그리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쉽게 풀 수 없는 문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정립이 그 고민들 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출처: Pexels.com ⓒ2020. Suzy Hazelwood
어떻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즉 인간관계를 정의하고 기획해야 할까.
과연 필요하기는 한 걸까?
어린 시절의 인간관계는 매우 가까운 곳부터 시작된다.
동네 친구들.
유치원 친구들.
학교 친구들.
주로 지척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멀리서 온 사람들과 친분을 쌓으며 지내며 살아간다.
친분을 쌓는다는 것은 친구로 지내는 것과 좀 다른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학업사회를 떠나서, 직장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왜냐하면,
학업사회는 수도권과 지방이 골고루 (나름) 분산돼 있지만,
직장사회의 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의 기업들의 수도권에 몰려있다시피 하니,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옛말에도 "사람은 한양으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말이 있다.
그에 맞는 환경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뜻인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방 소멸은 옛날부터 예견돼 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아무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니 사람 사이의 많은 문제들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이런 생각도 들 것 같다.
"학생 때까진 몰랐는데, 직장을 다니다 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가 참 힘든 것 같다."라는 생각말이다.
애당초 기대 따윈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던가.
부푼 기대에 큰 실망과 상처 그리고 밀려드는 절망감 이후 추스른 마음.
하지만 이것은 한 번이 아닌 알고 있었어도, 경험했었어도 자꾸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끝없는 쳇바퀴가 아닐까 싶다.
인맥관계가 부질없다는 연예인들의 주장은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동의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맥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술가나 작가 등 인맥을 만들 필요 없이(나만 잘해도 되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작업해도 살아낼 수 있는 직업군이 있는 반면, 주변인과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내는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관계정립이 절실하다.
그것이 친분의 의해서든, 계약에 의해서든.
친분이나 계약할 것 없이 대개 '갑'과 '을'의 관계가 맺어진다.
친분이라면 은연중에 내포되어 정해지는 관계가 될 것이고
계약이면 문서에 명시되는 아주 명확한 관계가 된다는 뜻이다.
출처: Pexels.com ⓒ2018. Savvas Stavrinos
그렇다고 해서, 자신만 늘 '갑'이고 '늘'이진 않는다.
'갑'과 '을'은 늘 정해져 있지 않다.
경우나 상황에 따라서 쉽게 변한다.
오늘의 '갑'인 내가 내일의 '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맥관계가 부질없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에서,
"옛말에도 '사람은 한양으로 말은 제주도로'라는 말이 있다"라고 언급했는데
이 말에 내포된 뜻이 '그에 맞는 환경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말을 인맥관계가 부질없다는 말과 섞어서 다시 풀어보면,
"인맥이 필요한 환경인지, 불필요한 환경인지는 그에 맞는 상황에서 생각해야 한다"
라고 풀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라면,
사람을 만나면서 기한과 범위를 정하고 만나진 않을 것이다.
업무적으로 만났지만 친밀한 관계로 이어져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될 수도 있고,
사적으로 만나더라도 케미가 없다면 그저 그런 사이로 지내게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 기획은 역시 기획적인 관점에서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친밀함을 나누는 사이인지,
업무적으로 맺어진 관계에 따라서 지켜야 할 선은 반드시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믿음이다.
너무 많은 기대는 실망을 낳고 너무 많은 실망은 관계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히 기대하고 적당히 실망하자.
"역지사지 易地思之,
처지(處地)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
(출처: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