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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冬將軍)* 오랜만이야 !

역대급 추위

by 시카고 최과장

* 동장군 - 겨울 장군이라는 뜻으로, 혹독한 겨울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어학사전)



시카고에 역대급 한파가 들이닥친다고 한 날 아침,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외투를 잘 여미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다음에 실외 주차장 문을 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소와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추위가 바로 내 얼굴을 후려 때린다.


차 시동을 걸때도 추위떄문인지 아슬아슬한 소리를 내면서 간신히 걸렸다.


평소 같으면 켤 생각도 안 하는 히터를 바로 켰다. 키지 않으면 손끝에 동상이 걸릴 것만 같았다.


'시카고 추위는 역시 명불허전이군'


무사히 병원에 출근한 다음에, 수치상 실제로 얼마나 추운지가 궁금해 날씨 정보사이트를 찾아 보았다.


Fahrenheit_Ed.jpg 날씨정보 사이트에서 찾아본 당시 시카고 기온 현황


그런데, 시카고 아침 기온 현황을 찾아보자마자 '이게 말이 되나'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 나왔다.


영하 6도


아무리 내가 평소 밖의 기온에 무덤덤한 편이라 하더라도, 출근시에 직접 느낀 추위는 영하 6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추운 날씨였는데 날씨 정보 사이트에서는 겨우 (?) 영하 6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갑자기 미국생활 초창기에 있었던 일화가 생각났다.

2008년 당시에 나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막 건너와서 외과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몇 달 안 될 때였다.

당시에는 시카고보다도 경도상 더 북쪽에 위치한 미네소타주 (州)의 로체스터시 (市)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한겨울 아침에 출근하는데 추위가 극심해서 외투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동여매도 찬바람이 불 때마다 안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간신히 출근을 마치고 병원 식당 카페테리아에서 회진을 시작하는데, 당시 외과팀 전부가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 외과 윗년차 레지던트들이 하는 대화를 엿들었는데,

"오늘 기온이 영하 5도라는데..."

"어쩐지 굉장히 춥더라..."


당시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오늘 날씨가 영하 5도의 날씨가 전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보다 훨씬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내 말을 들은 외과 윗년차 레지던트들은 약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영하 5도도 매우 추운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보다는 무조건 더 추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평소에 추위가 익숙한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왜 영하 5도에 벌벌 떨고 계신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에 검색엔진을 돌리다가 문득 날씨를 클릭하게 되었는데, 그때서야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외과 윗년차 레지던트들은 미국 사람들 답게 밖의 기온을 화씨로 말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그것을 섭씨로 알아들어서 제대로 된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화씨 영하 5도섭씨 영하 20.5 도와 같은 것으로, 윗년차 말대로 이미 충분히 (?) 추운 날씨였던 것이다.

그런데 새파란 외과 인턴 나부랭이가 감히(?) 영하 5도는 추운 것도 아니라고 박박 우기고 있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나름 어안이 벙벙했을만도 했다.




그때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날씨정보 사이트의 기본 단위를 다시 체크해 보았더니, 역시나 기본단위가 화씨로 되어있었다. 섭씨로 기본 단위를 변경하고 나니까, 진짜 (?) 밖의 기온이 드러났다.


섭씨 영하 21도 (체감 기온 영하 31도)


이제야 맞는 답을 찾은거 같아 만족스러웠다.


Celsius_Ed.jpg 섭씨로 기본단위를 변경한 후의 진짜 (?) 기온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지 이제 17년이 되어가는데도, 미국의 기본 단위들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역대급 한파가 하루 이틀만이라도 스치고 가더라도 그 여파가 오랫동안 남는다.

추위를 고려 안 하고 평소처럼 행동하다가 동상에 걸린 환자들이 뒤늦게 하나둘씩 병원으로 오는 경우가 꽤 되기 때문이다.


Frostbite.jpg 한파가 지나간 후에 생길 수 있는 동상 (Frostbite)


때마침 이번 주 나는 화상 중환자실을 커버하는데, 이번 한파가 커다란 여파 없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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