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고증 오류가 없는 K-드라마는 헛된 꿈일까 ?
앞의 글에서 계속 말씀드린 대로 정밀 분석을 진행하게 되면 '중증외상센터' 드라마에 대한 스포는 불가피할 예정이므로, 추후에 드라마를 시청하실 분들 중에서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여기에서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절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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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중증 외상 센터 5화의 의학고증 실패에 대한 정밀 분석을 해보겠습니다.
5화에서는 재난급 교통사고로 인해서, 한국대 병원에 발동된 재난 프로토콜 (Code Black)을 바탕으로,
연쇄 60중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여러 외상환자들에 대해서 다룹니다.
대규모 교통사고로 인해서 크게 다친 3명의 환자에 대한 치료가 집중적으로 나오는 5화입니다.
아래와 같은 3명의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5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비교적 나이가 어려보이는 상하복부 파열 환자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저는 지금도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도대체 드라마 제작진이 어떤 환자를 묘사하려고 했는지 파악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일단 나이가 비교적 어린 환자에게서 상하복부 파열로 인한 출혈을 막기위한 수술에 백강혁 선생과 한유림 과장이 참여해서 사투를 벌이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신이 으깨진거 같다고 하면서, 환자의 혈압과 심박수가 올라가는 묘사를 합니다.
일단, 부신이라는 장기가 여러가지 중요한 호르몬을 만들고 분비하는 장기는 맞습니다만, 부신이라는 장기는 단순하게 호르몬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쥐어짜거나 으깨진다고 그 안의 호르몬이 막 흘러나와서 환자 바이탈이나 몸에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은 화학작용을 통해 활성화가 되어야 호르몬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므로, 부신이 으깨져서 호르몬이 새어 나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실제 임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신이라는 장기 내에 수질 (Adrenal Medulla)에 종양이 생길 경우에는 좀 다른데,
그 종양은 갈색 세포종 (Pheochromocytoma) 라고 하며, 활성화된 부신 호르몬을 무차별적으로 분비하게 됩니다.
이렇게 호르몬이 무차별적으로 분비되는 갈색 세포종 (Pheochromocytoma) 의 경우에만, 환자의 배만 살짝 눌러도 혈압과 심박수가 올라갈 정도로 호르몬 과다분비가 문제가 되긴 합니다만, 그러한 경우는 부신 수질에 종양이 생겨야만 가능한 임상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극중 해당 장면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백강혁 선생이 캔서 (암) 환자라고 하면서 림파틱스가 샌다고 하는 발언을 합니다.
워낙에 설정이나 의학고증이 엉망인 원작 웹툰에서의 설정을 그나마 현실적으로 그려내려고...
갑자기 암환자라 둔갑시키는 무리수를 드라마 제작진들이 둔거 아닐까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렇게 외상환자가 갑자기 종양 환자가 되는 억지스러운 끼워맞추기 설정을 했음에도 의학 고증의 오류가 존재합니다. 부신 수질 종양의 경우, 환자의 혈압과 심박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환자 혈액속의 과다한 호르몬 작용을 억제해야 하므로, 두가지 단계의 약물치료를 해서 내과적인 치료를 완료하고 나서야 외과적인 절제 수술에 들어갑니다.
1단계로 알파 블로커 약제를 먼저 환자에게 투여하고 난 다음에
2단계로 베타 블로커 약제를 투여해서 환자의 혈압과 심박수를 조절하게 됩니다.
만약 1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베카 블로커를 주게 되면, 알파 수용체가 순식간에 자극되고 혈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높아져서 (Unopposed Alpha Stimulation) 환자가 말 그대로 수술대위에서 사망할 수 있습니다.
이와 동일한 작용기전을 보이는 경우가 또 있는데...
환자가 코카인 마약에 급성으로 중독되었을대, 이것을 베타 블로커로 바로 치료하려고 하면...
갈색 세포종과 비슷하게 갑작스러운 고혈압 (Unopposed Alpha Stimulation) 으로 환자가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환자 시나리오에서 무조건적인 베타 블로커 사용은 매우 위험한 행동인데...
극중 '빡' 박경원 선생은 베타 블로커를 바로 사용하는 만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베타 블로커라는 약제에 얼마나 다양한 약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ex. Labetalol, Metoprolol, Esmolol)
환자에게 쓰는 약제의 종류와 용량을 치밀하고 깐깐하게 체크해야 할 마취과가 어떻게...
그냥 베타 블로커라고 퉁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떠한 베타 블로커를 사용했든지 간에, 5밀리 그램은 너무 적은 용량입니다
(Metoprolol은 그나마 보통의 용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중증외상센터' 드라마 전반에 걸쳐서 가장 거슬리던 장면들은 바로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었습니다.
수술중에 환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장면들인데, 공통점이 보이십니까 ?
모든 환자들이 전신마취가 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안구보호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신마취시에 환자의 눈을 제대로 감겨서 테이프로 붙이지 않으면...
눈물이 말라서 안구건조로 각막 찰과상 (Corneal Abrasion) 이 생길 위험이 매우 높아집니다.
각막 찰과상이 생기면, 환자는 전신 마취에서 깨자마자, 한쪽 혹은 양쪽 눈이 다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지속되는등, 마취과의 매우 잘 알려진 부작용입니다.
따라서 전신 마취하는 환자의 눈은 항상 테이프로 감겨 놓는 것이 모든 마취과 의사들의 상식입니다.
본격적인 의학 영화가 아닌 영화에서도 전신마취 걸린 환자의 눈은 테이프로 감겨 놓는 것이 상식입니다.
Jessica Alba 와 Hayden Christensen 주연의 2007년도 영화 'Awake' 에서도 남주가 전신 마취가 걸리고 나서는 눈이 테이프로 감겨집니다. (최소한의 의학고증)
물론 이 영화 'Awake'에서는 호흡관이 테이프로 고정이 안되어 있는 또 다른 고증 오류가 있긴 합니다만...
3명의 외상환자 중 정강이 개방골절 된 환자가 수술중에 갑자기 심전도가 늘어지다가 심정지가 와서 코드 블루 (Code Blue) 가 뜨게 됩니다.
코드블루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백강혁 선생이 정형외과 교수에게 친절하게 폐 색전증의 질병이 생기는 기전 (Pathophysiology)을 한단계씩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평소의 백강혁 선생답지 않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이 장면은 매우 애석하게도 잘못된 의학적 설명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백강혁 선생이 친절하게 한 단계씩 설명해주는 질병은 극중에서 나오는 '폐 색전증'이 아니라, '지방 색전증'입니다. 이 의학적 오류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지방 색전증 환자에게는 특별한 효능의 치료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극중 장면에서처럼 혈전 용해제인 헤파린을 준다고 극적으로 치료될 가능성이 그나마 있는 것은 환자가 폐색전증이 생겼을 경우에 한정됩니다.
지방 색전증이 생긴 환자에 대한 치료는 아직까지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알려져 있고, 그냥 Supportive therapy 만 해주는 것이 맞습니다.
외상 외과 초천재인 백강혁 선생이 설마 '폐 색전증' 과 '지방 색전증'을 헷갈려서 환자에게 잘못된 치료를 했을리가 없으므로, 드라마의 의학 고증의 오류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