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일방통행이 아닌 의사 - 환자 관계
간이식 마취를 담당하는 어느 날, 생체 간이식 수혜자 마취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체 간이식 수술 마취에 참여하게 된다면 나는 수혜자보다 공여자 마취를 개인적으로 좀 더 선호해 왔다.
보통 생체 간이식 공여자들은 아프지 않은데도 큰 수술과 전신 마취를 받아야 되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감이 특히 수술 직전에 매우 크다.
그래서인지 담당 마취과 의사인 내가 환자와 똑같은 생체 간이식 공여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다고 밝히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환자의 불안감이 많이 해소되고, 나에게 이것저것 직접 물어보면서 안도감을 많이 느끼는 듯했다.
나 또한 단순히 기계적인 마취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환자의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생체 간이식 공여자 마취를 좀 더 선호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은 생체 간이식 수혜자 마취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환자는 53세 남자환자로 대장암이 간에 전이가 된 경우인데, 다른 곳에 전이가 더 퍼지지 않아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친한 친구가 생체 간 기증 의사를 밝혀 간이식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였다.
수술 전 대기실에서 처음 만나본 환자는 생각보다는 훨씬 더 밝고, 드디어 새 간을 받게 된다는 희망에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들어달라고 했는데, 왼쪽 손목에 착용한 팔찌를 수술 중에도 가능한 한 계속 찰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6년간 암과 싸워온 그 환자는 지난 6년간 힘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자신과 함께 한 팔찌를 계속 가깝게 두고 싶어 했고,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먼저 수술실에 들어간 공여자의 간에 크게 문제가 없어 보여서 생체 간이식 수술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혜자를 수술실로 옮겼다.
환자는 암이 간에 전이가 되긴 했지만, 간 기능에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아서 전신 마취 유도와 여러 가지 침습적 라인을 잡는 데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전이된 암을 가진 환자의 간이식 수술이라 그런지, 이식 외과 전문의들도 다른 곳으로 암이 전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개의 동결 조직 절편 검사를 보낸 결과, 환자의 담도에서도 암조직이 발견되었지만 그 외의 장기에서는 다행히도 전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식 외과의들은 환자의 담도를 완전히 제거하고 생체 간이식 수술을 계속 진행시킨 다음, 담도 재건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한 결정에 따라 생체 공여자의 간이 무사히 수혜자에게 이식되었고 가장 큰 난관인 재관류 과정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다.
수술 중에 수혈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후에 환자의 호흡관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8시간 정도의 수술이 끝나고 나서는 아무런 문제 없이 환자의 호흡관을 제거하고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길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 도착할 무렵에는, 환자는 이미 의식이 뚜렷하여 수술 부위의 통증보다는 자신의 콧줄이 더 불편하다고 말할 정도로 원래의 정신 상태대로 돌아와 있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수술 후 최소 며칠 동안은 호흡관을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무사히 호흡관을 제거해 줘서 고맙다고 했고, 그렇게 담당 마취 의사로서의 내 임무를 무사히 마쳤다.
수술이 끝난 후에 마취과 의사들은 보통 환자를 입원실까지 찾아가 보지는 않는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간이식 수술만은 예외로 두어 수술 후에는 항상 환자의 병실을 직접 방문해서 다시 한번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수술 다음날 중환자실에서 다시 만난 환자는 여전히 불편한 콧줄 말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환자의 수술이 잘 마무리되고 회복이 잘되고 있음에 매우 기뻤던 나는 그제야 나도 생체 간이식 수술에 공여자로서 참여한 적이 있었노라고 환자에게 밝혔다. 마취과 의사가 직접 공여자였던 경우는 전혀 예상을 못해서인지, 환자는 사뭇 놀라면서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수혜자는 누구였는지... 생체 간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는지... 수술은 언제 이루어졌는지...
그래서 나는 수혜자는 우리 아버지였고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수술은 이제 곧 20년이 되어간다고 답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동시에 수술한 지 20주년이 언제 되는지 머릿속으로 따져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내일 20주년이 되는군요"
2005년 8월 1일, 그날의 생체 간 공여자로서의 경험은 당시의 나에게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아버지도 결국 건강을 회복하셨고...
흐르는 세월에 무뎌져서 그런지 이제는 그 수술 날짜를 전혀 기억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환자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갑자기 내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히 내일이면 20주년 기념일이긴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시차를 고려해 본다면, 한국에서는 바로 오늘이 바로 수술 20주년 기념일이 아닌가?
한시라도 빨리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에 와서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는데, 시간상 이미 주무시는 듯했다. 나도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까맣게 잊고 계신 듯했다.
아마 이 환자와의 대화가 없었더라면...
당사자인 나조차도 20주년 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지나갔을 가능성이 높았다.
환자는 계속해서 회복을 이어 나가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고 수술 후 열흘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퇴원이 결정되었다. 퇴원하는 날 다시 환자의 병실을 방문했을 때에는, 환자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퇴원할 준비가 끝난 듯한 모습이었다.
환자는 우리 아버지가 20주년을 맞이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신 이야기에 많은 감명을 받았으며,
자신도 20주년 기념일을 축하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했다.
6년이 넘게 암과 싸워오다 보니, 미래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야 희망을 본 거 같다면서 환한 웃음을 보였다.
나는 환자에게 잘 회복하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했고, 덕분에 20주년 기념일을 기억하고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회복시기를 잘 넘기고 빨리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환자 본인의 20주년 기념일이 되면은, 한 번쯤 나를 기억해 달라고 말한 뒤에...
환자의 요청 하에 기념촬영을 하고 병실을 나섰다.
수술 20주년 기념일을 상기시켜 준 것이 대수로운 일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큰 사건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크나 큰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년 전 생체 간이식 공여자였던 나는 환자로서의 짧지만 소중한 경험을 토대로 커리어 인생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식 수술이라는 커다란 난관을 거쳐야 하는 환자들을 단순히 치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거쳤고... 차례로 마취과 전문의, 중환자 의학과 전문의 그리고 이식 마취과 전문의로서의 수련을 마치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귀중한 경험조차도 시간이라는 피할 수 없는 훼방꾼에 의해 20주년 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환자는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나는 20주년 기념일을 기억하여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에 더하여 지난 인생 경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의사-환자관계에서 환자는 항상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환자와의 일화에서 보듯 의사-환자 관계가 기존의 생각처럼 일방 통행적인 것이 아닌, 상호 보완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환자가 지금쯤은 회복을 잘 마치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갔기를...
또한 환자의 소망대로 맞이할 본인의 20주년 기념일에는 나를 한 번쯤 떠올려 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