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덕하다
2010년 봄이었다.
그전 해에 나는 오랜 친구를 갑작스럽게 잃었다.
겨우 삼십 중반을 앞둔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로 인해 번아웃 비슷한 게 왔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누군가 내 발을 세차게 걸어 무방비한 상태로 앞으로 고꾸라진 기분이었다.
삶이 너무나 허무하게 여겨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인생이 참 무가치하게 느껴져서 아무런 의욕이 일지 않을 때였다.
우연히 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를 보다가 잘 알려진 여배우가 슬픔을 토해내는 장면을 보게 됐는데,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샘이 터지면서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울고 또 울고 나니 가슴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내려진 기분이었다.
드라마가 종영을 하고 나서 문득 내 슬픔의 무게를 덜어준 그 배우가 고맙게 느껴졌고, 한참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그렇게 깊은 내면의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관심이 생겼다.
그 배우가 출연한 다른 드라마들을 정주행 했고, 배우에게 꽂히게 되었다.
한 번 관심이 생기면 학구열이 폭발하면서 완전히 알 때까지 몰두하는 나의 기질이 대상을 발견한 거였다.
배우에 대한 온갖 자료와 인터뷰들을 찾아보니 보기보다 더 어른스럽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천부적인 연기 감각을 지녔고, 어린 나이에 성공한 사람이지만 굉장히 순수하단 느낌을 받았다.
또, 지적인 느낌도 들었다.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가장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팬커뮤니티를 찾아냈다.
한 달 정도 눈팅을 하고 분위기를 익혔다.
젊은 팬들이 많았고 활기 차고, 재치 있는 팬들이 많아서 맘에 들었다.
오래 심사숙고한 끝에 뉴비신고를 하고 인사글을 올렸다.
엄청 예의 바른 어조로 글을 썼는데 다들 너무 편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이, 성별을 따지지 않고 반말하는 분위기였다.
나에게도 말을 놓고 편하게 글을 쓰라고 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은 부담이었다.
어쩌다 조심스럽게 궁금한 걸 묻고 정보를 얻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드라마갤이 어쩌다 특정 배우의 팬커뮤니티가 됐는지 궁금해서 그 과정을 물으며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물었는데, 벌떼같이 달려들어 안 좋은 댓글을 달았다.
나는 정말 몰라서 물은 거였는데 알고 보니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던 갤이었고, 해서 정체성 질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때쯤 타 카페와 미묘한 갈등을 겪고 하는 시점이라 혹시나 분탕질을 하려고 뉴비인 척 잠입한 사람으로 오해했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세세하게 설명을 들었지만,
그땐 정말 깜짝 놀랐다.
아, 여긴 정말 무서운 곳이구나 싶어서 글을 지우고 잠수를 탔다.
하지만 난 원래 쉽게 포기하거나 속단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눈팅을 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만큼 배우를 파악하기에 쉬운 곳은 없었기에 탈퇴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 배우가 궁금했고, 계속 연기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같은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있으니 동질감이 생겼고, 처음으로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이라 즐거웠다.
그렇게 몇 달을 눈팅하면서 점점 갤을 이해하게 됐고, 참 재밌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멀지 않아 상덕후의 길을 걷게 되리란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