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16부작 미니시리즈에 캐스팅되었다.
흙수저인 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인 남주를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그런 진부한 스토리로 진행되는 드라마였다.
기획 의도는 남자를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이용하려는 여자들의 심리를 꼬집고,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남자의 진정한 사랑 찾기를 보여준다는 거였는데,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를 답습해서 용두사미로 가고 있는 드라마였다.
그래도 시청률은 중박 이상은 유지되었다.
카페에서는 촬영장 조공을 준비 중이었다.
나는 어느새 조공 스텝이 되어 있었다.
물론 전적인 참여는 나의 여건상 어려웠고, 요청이 있을 시 참여했다.
나는 덕질로 나의 재능을 발견했다.
나는 패러디와 개드립에 재능이 있었다.
배우에게 하이컷 잡지를 모방해서 재밌게 만들어 보내려는데, 잡지에 흔히 들어가는 성상담 코너를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밌게 써 달라는 의뢰였다.
뭐,,, 내겐 어렵지 않은 요구라서 하루 만에 써서 조공 스텝 카페에 올려줬다.
약 빨고 썼냐면서 다들 뒤집어 질만큼 재밌어했다.
그런 식으로 나의 드립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조공물품을 운반할 차량이 필요한데 작은 트럭이나 밴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다.
내겐 조달할 루트가 있었다.
친구에게 짐을 싣는 용도로 사용되는 스타렉스가 있었던 거였다.
하루만 쓸 수 있냐고 했더니 기꺼이 빌려 주겠다고 했다.
친구는 스타렉스를, 나는 내 차를 운전해서 퇴근 후 덕후를 만나러 갔다.
10시 넘어 조공 하우스 근처 도로에 차를 대놓고 덕후들을 기다렸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십덕 오브 십덕으로 알려진 R이었다.
그 녀석과 매일 카페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아서인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다른 덕후들과는 달리 외모부터 십덕스런 외모였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릴 텐데 대뜸 반말이었다.
- 혼자 왔어?
- 아니, 친구랑. 친구는 내 차에서 대기 중.
- 춥다, 차에 들어가서 다른 애들 기다리자.
둘이 스타렉스 안에 들어가 앉아 있으려니 다른 덕후 둘이 차를 향해 다가왔다.
W와 B였다.
B는 해운대에서 인사를 했었기에 낯설지 않았는데 처음 보는 W는 조금 낯설었다.
R이 나에게 이 사람이 W라고 얘기해 주면서 오프에선 '샤이한 사람'이라고 했다.
되게 의외였다.
카페에서는 한 마리 야생곰 같은 면을 뿜뿜하고 있는 덕후였는데 상상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나랑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정성을 다해 내 영상을 편집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밤에 포장하면서 먹으라고 사간 닭강정 냄새를 맡자마자 B가 맛있겠다며 꺼내서 먹자고 했다.
나는 '야, 들어가서 먹어' 하고 '나는 간다. 수고들 해'하고 차에서 나왔다.
같이 차를 나와 인사를 하고 나는 내 차로 돌아와 친구와 함께 집으로 왔다.
그날 다른 덕후들은 밤샘 작업으로 포장을 완료하고 담날 촬영장으로 서포트를 나갔다.
촬영장 조공을 마친 덕후들이 리뷰와 후기를 시간차로 올렸고, 나도 덕후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배우와 스텝, 매니저의 인증 사진들이 올라왔다.
덕후들은 좋아하는 배우를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덕후들은 또 하나의 추억을 공유하게 되었다.
덕질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공유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