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7

- 부국제

by 박드레

다시 가을이 되었을 때, 부산 국제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배우는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나는 영화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전에도 여러 번 영화제에 참석해서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영화들 중 나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영화를 몇 편씩 보고 돌아오곤 했었다.

이번엔 영화가 목적이 아니라 배우를 보기 위해 참석하기로 했다.

다음날 수업이 많이 잡혀 있어서 이틀을 빼기는 어려웠다.

당일로 부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혼자 부산까지 당일 왕복 운전은 무리였다.

친구를 섭외했다.

여행을 겸한 영화제 구경이라고 미끼를 던졌더니 기꺼이 동행하기로 했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 부산에 도착했다.

해운대엔 영화제 구조물들과 각종 부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바닷가를 산책하거나 스탠드에 앉아 음료도 마시고 간단히 음식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국인들도 참 많았다.

친구와 나는 해운대를 한 번 돌아보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어차피 대부분의 행사는 저녁 무렵 진행이 될 터였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서 해운대 바닷가에 앉아 있었는데 옆에 어딘가 낯이 익은 무리들이 있었다.

누구지? 어디서 봤지? 생각하다가 난 웃음을 터트렸다.

덕후들이었다.

팬미팅과 런닝맨 촬영 현장에서 보았던 몇몇 덕후들의 얼굴이 분명했다.

나는 눈썰미와 기억력이 꽤나 우수한 사람이다.

매일 온라인상에서 만나 친근하게 지내는 사이라 이렇게 만났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지 싶어 조심히 다가갔다.


- 저,,,

00 씨 맞으시죠?

금세 눈이 동글해졌다.

- 네, 덕후시구나. 누구세요?

- 저 00예요.

-정말요? 너무 반가워요.

이따 스타로드 때 근처에 같이 있어요.

그거 보시러 오신 거 맞죠?

- 네. 그럼 저녁때 또 인사해요.


너무 신기했다.

카페에서 특히나 눈에 많이 띄는 십덕들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밤이 되자 해운대는 조명이 밝혀지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스타가 출몰했다는 증거였다.

우리나라 배우들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와 감독들이 팬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이벤트도 하고 그랬다.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다.

함께 간 친구는 영화제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세계라며 한껏 들떠 있었다.

우리는 스타로드 때 배우에게 줄 장미꽃을 한 송이씩 사서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붉은 카펫이 깔려 있는 길을 영화배우들이 걸으며 팬들과 인사하는 스타로드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길을 따라 쳐져 있었고, 바이케이드 바깥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나도 친구와 비교적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 다가와 나의 등을 두드렸다.

낮에 인사했던 십덕 중 하나였다.


- 이따 행사 끝나고 덕후들이랑 술 한잔 하러 갈 텐데 같이 안 가실래요?

- 저는 오늘 저녁에 운전해서 올라가 봐야 해요.

- 아, 그래요? 아쉽네요. 카페에서 봐요.

- 네.


행사가 시작되어 스타들이 한 명씩 입구에 등장했다.

팬들의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팬들이 건네는 꽃을 받으며 걸어갔다.

드디어 우리 배우가 등장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배우가 입구에 들어서고 그 뒤를 매니저가 따르고 있었다.

입구 쪽에 있던 나는 배우가 등장한 후부터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친구는 어느새 배우의 이름을 외치며 손에 쥐고 있던 꽃을 흔들어 댔다.

배우가 다가와 친구와 내가 건네주는 꽃을 받고 인사를 하고 걸어 나갔다.

나는 바리케이드 바깥쪽을 배우를 따라 걸으며 영상을 계속 촬영했다.

한참을 걷던 배우가 한 무리 앞에서 갑자기 등을 돌려댔다.

등 뒤에 배우의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팬들이 소리를 지르며 그중 하나가 그 이름표를 떼어냈다.

영상을 뒤에서 촬영하고 있던 나는 첨엔 사람들에 가려 자세히 볼 수 없었는데 나중에 내 카메라에 촬영된 영상을 보고 알았다.

배우는 팬들에게 등을 내어 주어 이름표를 떼게 해 주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그 뒤를 따르며 배우가 호텔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영상을 찍었다.


얼마 전에 배우가 새벽에 싸이월드 대문글을 열 번 넘게 바꿔가며 한참을 같이 놀았던 적이 있었다.

엄청 많은 문장을 자음으로 작성해서 그걸 해석하느라 머리가 쪼개질 뻔한 일이 있었는데, 모든 문장은 해석을 다하고 'ㅌㅇㅂㅌ'라는 단어만 해석을 못해서 그게 뭐지? 했었다.

그게 '특이벤트'였고, 팬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이름표를 제작해서 등에 붙이고 영화제에 온 거였다.

그땐 덕후들 중 아무도 그런 이벤트를 벌일 거라고 짐작할 수 없었다.

팬들을 위해 그런 이벤트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카페에 들어가니 온통 스타로드 얘기뿐이었다.

이름표를 직접 뗀 덕후가 이름표를 인증하며 송구하지만 자기가 대표로 보관하겠다고 글을 썼다.

나는 나도 그 자리에 있었고, 영상을 찍었다고 얘기했다.

대표적인 능력자 모 덕후가 쪽지로 그 영상을 자기한테 보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자기가 편집을 해서 보내 줄 테니 내 이름으로 올리라고 했다.

현장에 내려간 덕후들은 내일이나 올라올 거라 아직 직캠을 올릴 여유가 없는데 내 영상이 가장 따근한 영상이 될 거라 했다.

난 바로 보내 주었다.

몇 시간이 걸려 능력자 덕후가 편집을 하고 노이즈를 제거하고 브금을 깔아 나에게 보내 주었고, 그날 새벽에 나는 카페 로고가 달린 영상을 올렸다.

그 영상이 지금까지도 유튜브에 남아 있다.



덕질은 열정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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