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6

- 엽서 이벤트

by 박드레

덕후로서 맞이하는 배우의 두 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그동안 포토북이나 메시지북 같이 많은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많이 해 왔는데 이번엔 더 특별한 걸 해주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저런 논의 끝에 배우 사진으로 560장의 엽서를 만들어 팬들이 축하 메시지를 쓰고 그걸 주기로 했다.

560장을 하나하나 맞추면 배우의 대형 사진이 완성되는 거였다.

그러자면, 한 장이라도 수거가 안 되면 안 되는 거였다.

스텝들은 100% 수거를 목표로 덕후들과 이벤트를 진행해 나갔다.

원하는 수만큼 신청을 하고 자기 주소로 엽서를 받고, 글을 작성해서 다시 스텝 주소로 발송해야 하는 절차였다.

난 20장을 신청해서 받았는데 처음에 받고서 엽서 앞면의 그림을 보고는 대체 이게 무슨 그림이지? 하고 난감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걍 온통 까만색의 엽서인 것도 있고, 온통 하얀색의 엽서인 것도 있고 하여튼 이상했다.

나중에 560장을 다 맞춰서 완성된 대형 사진을 보고서야 내 엽서가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한 장을 작성하고 나니 딱히 또 쓸게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파트 강사로 한 학원에만 2번씩 출강을 하고 나머지 시간엔 과외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아이들을 활용하리라 생각했다.

학원에 가서 내 수업을 듣는 고 2 남자아이들에게 엽서를 나눠주었다.


- 자, 얘들아

너네가 쌤을 쫌 도와주어야 할 일이 있어.

물론 쌤이 너네에게 혜택을 주어야겠지?

- 뭔데여?

- 여기 엽서에다가 '생일 축하한다'는 축하 메시지를 쓰는 거야.

길게 쓰면 좋겠지만 간단히 써도 돼.

대상은 OOO 알지? 그 누나에게 쓰는 거야.

- 왜요?

- 나 그 누나 별론 데요. 난 수지 누나 좋아해요.

- 난 아이유요.

- 알았어요. 그냥 쌤이 보내야 할 일이 있는데, 너무 많아서 너네 도움을 받고 싶은 거야.

이해했지?

후딱 한 장씩 그냥 쓸래? 아님 토요일 보강을 두 시간 할래?

- 아, 쌤,,,

- 완전 강요야, 강요.

-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때론 불합리한 것도 받아들여야 해.

너희도 다 컸으니까 경험해 봐야지.

- 알았어여. 줘여.


아이들은 나한테 엽서를 받아 열심히 작성했다.

아이들이 쓴 엽서를 수거해서 읽어 보니 평소 그 아이의 스타일이 그대로 엽서에 담겨 있었다.

모범생인 아이는 엽서도 성실하고 참하게 썼다.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고 팬이라면서 좋은 연기 부탁한다고 썼다.

장난기 가득한 녀석은 이상한 그림을 그려 놓고 생일 축하해요! 누난 내 여자니까, 누난 내 여자니까! 이렇게 썼다.

딸랑 '생일 축하해요'만 쓴 녀석도 있었다.


- 얘들아

내가 웬만하면 프라이버시가 있어서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누나, 생일 축하해요. 사실 쓰기 싫은데 국어쌤이 협박해서 쓰는 거예요.

전 세경이 누나 좋아해요! 메롱~"

이라고 지나치게 솔직하게 쓴 아이가 누굴까?

쌤이 엄청 예뻐해 주고 싶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아이들의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20장의 엽서를 제 날짜에 스텝에게 보내 줄 수 있었다.

특수 제작이니 분실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와 꼭 마감 전으로 보내 달라는 당부글이 올라왔다.

놀랍게도 560장은 단 한 장도 빠지지 않고 수거되었다.

덕후들은 위대했다.


생일에 맞춰 선물과 엽서들이 배우에게 전달되었고, 곧바로 인증글이 올라왔다.

스텝들은 560장의 엽서를 스튜디오에서 몇 시간에 걸쳐 벽면에 일일이 맞춰 하나의 거대한 완성본을 만들었다.

그 과정과 완성된 배우의 사진을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배우에게 줬고, 카페에도 올렸다.

엄청 감동이었다.

우리도 감동을 받은 만큼 그 선물을 받은 배우도 감격을 했을 터였다.



덕질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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