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부터 시작된 드라마가 해를 넘겨 1월이 돼서야 끝났다.
카페는 단관 행사를 준비했다.
단관은 마지막 방송을 팬들이 극장 한 관을 빌려 단체관람하는 행사다.
나는 친구와 둘이서 참석하기로 했다.
드라마가 10시에 시작해서 저녁에 출발하게 됐다.
압구정 CGV에 도착해서 단관 기념품을 받고 입장했다.
행사장은 덕내(덕후냄새)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그 사이 팬들끼리 오프에서도 많이 만나고 하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많아졌고, 단관은 늦은 시간에 진행되는 관계로 일반 팬들보다 덕후들의 비중이 월등해서 그랬을 것이다.
로비에서 아는 얼굴들과 간단히 인사를 했다.
나도 그렇지만 친구도 단관이 처음이고 덕후들이 사방에 포진한 사이에 앉아 있으니 되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친구도 남자 영화배우를 좋아하고 있어서 그런지 거부감은 1도 없었고, 그냥 즐거워했다.
드라마 시작 전, 익숙한 두 MC가 등장하여 간단히 이벤트를 진행하고 선물도 나눠 주었다.
또, 카페에서 팬들이 제작한 영상도 상영했는데, 퀄이 너무 좋아서 감탄하며 봤다.
드디어 마지막 방송이 송출되었다.
한국 드라마의 엔딩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됐는데, 마지막에 키스신이 있었다.
덕후들은 일부러 엄청 크게 '우우우'를 외쳤다.
나랑 친구는 그게 너무 웃겨서 깔깔깔 웃었다.
덕후들과 다 같이 막방을 보니 너무 즐거웠다.
끝나고 나서 같이 집으로 가기로 한 덕후 두 명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행사가 끝나기에 같은 방향이면 내 차로 같이 오는 게 좋을 것 같아 카페에 글을 썼었는데, 덕후 두 명이 같이 오고 싶다고 했었다.
넷이서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돌아왔다.
둘은 대학생으로 보였다.
나중에 지역 주민끼리 한 번 뭉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담날, 단관 후기를 쓰고 있었는데 R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시간이 되냐고 했다.
마침 월요일은 수업이 없었다.
어떻게 쉬는 날인 줄 알고 연락했냐고 했더니 이상하게 내가 떠올랐다고 하며 같이 동행하자고 했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보다고 했다.
행선지가 어디냐고 했더니 일산이라고 했다.
오늘 종방연이 있는데 과일 바구니를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오후에 마포에서 R을 픽업해서 일산으로 갔다.
일산에 도착해서 업체에서 과일 바구니를 받아 실었다.
근데 그 사이 카페에서 덕후들끼리 종방연에 케이크가 필요할 거 같은데 하나 하자는 의견이 오가고 있었다.
종방연까진 서너 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케이크 제작엔 터무니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열심히 덕후들이 업체를 알아봤고, 마장동에 있는 업체가 가장 빨리 제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고민 끝에 업체에 의뢰를 했다.
일산에서 마장동까지 이동해서 또 일산 식당까지 케이크를 운반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는 거였다.
더구나 곧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산에서 케이크가 제작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가 업체에서 연락이 와서 마장동으로 출발했다.
업체에서 케이크를 픽업해서 일산으로 다시 돌아갔다.
퇴근 시간이 맞물리면서 평상시보다 두 배 가량이 더 소요된 시간에 식당에 도착했다.
주, 조연배우와 스텝들이 다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있는 모양이었다.
매니저께 케이크랑 과일 바구니를 전달하고 우리도 식사를 하러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고 있는데 매니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가 제작한 포토케이크로 주연 네 명이 커팅식을 하고, 보도 자료도 나갈 거라고 고맙다고 하시며 배우가 너무 감사하다는 얘기를 전해 달라고 했다고 하셨다.
전화를 받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하루 종일 똥줄 타게 뛰어다니고 운전하느라 고단했는데 피곤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카페에서도 성공적으로 전달됐다는 글을 R이 올리고 다들 고생했다며 위로를 많이 해 주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카페에 배우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팬들 덕에 자신의 어깨가 올라갔다며 너무 고맙다는 내용의 장문의 글이었다.
글에서 술이 덜 깬 냄새가 마구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문장에서 흥분이 되고 기분이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상태가 느껴졌다.
자신을 내조하느라 고생한 덕후들에게 애정이 넘쳐나는 어조여서 다들 술 깨고 다시 지우러 오는 거 아니냐며 놀릴 정도였다.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며 1조 2000억 원을 벌기는 힘들겠지만 열심히 벌어 집이라도 장만해서 청혼하겠다는 실없는 농담도 했다.
다들 PDF로 따 놓았다가 안 지키면 고소하겠다고 했다.
즐거웠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덕질 삼 년 만에 나는 상덕후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