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10

- 두 번째 팬미팅

by 박드레

갑작스럽게 팬미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품을 끝내 놓고 쉬는 중인데 팬들을 더 가깝게 만나고 싶었는지 이번엔 미니 팬미팅으로 작은 홀을 빌려서 하고 싶다는 배우의 소망이 있었다.

또 비공개로 진행하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다.

모든 비용은 소속사에서 부담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 즈음 나는 개인적인 일로 엄청 바쁠 때였는데, 그래도 당연히 팬미팅은 참석하기로 했다.

250명만 입장할 수 있는 규모라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한 티켓팅 전쟁이 예상되었는데,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번엔 나 혼자 가기로 했다.

난 이제 명실상부한 덕후가 아니던가?

머글은 이제 필요 없었다.


저번에 얼굴을 튼 지역 주민과 함께 차를 타고 서초동으로 이동했다.

같이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입장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 팬들이 많아서 배우가 글로벌 해졌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는 여덕후가 우세한데, 팬미팅 현장에서는 남자 팬들도 꽤 많았다.


작은 규모이고 거의 다 덕후라서 정말 편했다.

덕내가 충만한 것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 MC와 배우가 함께 등장했다.

덕후들은 본능을 숨기지 않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도 아녔다.

배우와 진행자가 이젠 친구 사이쯤 되는 것처럼 호흡이 착착 맞았다.

모든 순서가 미니 팬미팅답게 소소하면서도 알찼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어서 배우의 진솔하고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배우가 직접 준비한 선물도 당첨을 통해 나누어 주었다.

나중에 카페에 계 탄 덕후들이 인증을 해 줘서 내용물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 직접 사인한 대본이랑 폴라로이드 세 장이 들어 있는 선물이 있었는데, 그걸 획득한 덕후가 가장 부러웠다.

차 선물도 있었고, 책 선물도 있었다.

하나하나 직접 고르고 사인하고, 손 편지까지 준비한 모습에 팬들을 많이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감동적이었다.

섬세하고 따뜻한 성격이 드러나는 선물들이었다.


초밥을 직접 만들어 팬들에게 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생선 초밥이 아닌 새우, 사과, 아보카도 등을 밥에 올려 주는 거였다.

번호가 불린 덕후들이 앞으로 나가 배우가 만든 초밥을 직접 받아먹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사과 초밥을 만들기 위해 사과를 깎다가 손을 살짝 베었나 보다.

팬들이 놀랄까 봐 슬쩍 넘어가려 했는데 피가 나니까 MC가 보고 "사과 안 깎아 봤네!" 하면서 "밴드 있으신 분~"하고 외쳤는데 밴드를 지참하고 다니는 덕후가 마침 있었다.

밴드를 공수받아 손가락에 붙이고 계속 코너를 진행했다.


댄스나 노래 이런 순서 없이 대화로만 진행된 팬미팅이었는데 이게 더 좋았다.

많은 인원이 아니고 소수이다 보니 오붓했고,

보다 솔직한 이야기와 즉각적인 리액션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길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얘기하다 보니 알려진 내용과 다른 부분들도 꽤 있었고, 몰랐던 부분들도 많아서 새로웠다.

자신의 얘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고 재치 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나이대가 비슷한 진행자와 팬들이 앞에 있다 보니 부담스럽지가 않아서인지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였다.

또 몇 년 사이 덕후들과 직, 간접적으로 많이 만나다 보니 벽이 많이 허물어진 느낌이 들기도 해서인지 그동안 봐 왔던 모습 중 가장 편안한 모습이었다.

비공개 팬미팅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배우가 덕후들을 한결 가깝고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덕후들도 배우와 가까운 거리에서 친구와 수다 떨듯이 웃고 떠들고 하는 이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스타와 팬 사이,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가 한결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두 시간 반이나 진행된 만남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팬미팅이 끝나고 돌아오면서 나는 이제 오프는 좀 자제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덕질도 앞으로 제약이 많아지리란 걸 인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며칠 후 나는 인생의 대전환을 맞이할 일이 예정되어 있었다.

열흘 후, 나는 결혼을 하게 되어 있었다.



나는 덕질만 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의 인생에도 충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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