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11
- 이제 조공은 안녕인가요?
2013년 봄, 나는 결혼과 동시에 지방 살이를 하게 되었다.
나의 오랜 서식지를 떠나 낯선 도시에서 신혼을 보내는 동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는데 도시의 삶과는 너무나 다른 시골의 삶이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일단 항상 24시간 밝았던 도시의 밤과는 달리 시골의 밤은 엄청 어둡고 조용했다.
차가 없으면 식당을 가거나 시내로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도시가 너무 그리웠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향수병이 시작된 거였다.
난 결혼 사실을 카페에 알리지 않았다.
너무나 사적인 일이었고, 몇몇의 얼굴을 아는 정도의 친분이어서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냥 이사했다는 정도만 알렸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날 무렵, 배우의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 조공을 위해 덕후들은 아이디어를 짜고 계좌도 다시 열었다.
몇 가지 선물을 준비하고, 덕후들이 직접 그린 그림일기로 일기장을 만들어 주는 이벤트도 준비했다.
나는 그때, 향수병에 걸려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았다.
가끔씩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만 카페 글을 통해 전해 들었다.
생일 조공 스텝인 R에게 전화가 왔다.
지방으로 이사했단 걸 알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조공날 운전을 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총대를 픽업해서 같이 소속사 근처 카페로 가서 선물과 제작한 케이크를 매니저한테 전달해 주면 된다고 했다.
자기가 시간이 안 돼서 갈 수 없다고 부탁한다고 했다.
강남까지는 1시간 거리였다.
나는 사실 도시 바람을 쐬고 싶었다.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총대와 소속사 근처 카페에서 덕후들을 만났다.
모두 초면이었지만 글로 몇 년을 만났던 사이라 위화감이 전혀 없이 금방 친근해졌다.
총대 q와 디자인을 잘하는 H, 중성적인 매력이 있는 S,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포장을 하고 스티커 작업을 했다.
준비를 마치고 매니저한테 연락하니 카페로 오셨다.
한 번 어둠 속에서 인사했던 사이지만 어색하고 불편했다.
선물과 케이크를 전달하고 넷이서 밥을 먹고 헤어졌다.
S는 내가 이주한 도시와 아주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었다.
둘이 차를 타고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졌다.
생일 조공이 끝나자마자 배우가 32부작 사극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연스럽게 생일 조공 스텝들이 모두 드라마 스텝이 되었고, 필요한 인원이 더 추가되어 조공팀이 꾸려졌다.
나는 지방민이라 오프보다는 온라인으로 도움을 많이 주고자 했다.
여러 가지 물품을 서치하고 업체를 선정하고 제작할 물품의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밤마다 조공 카페에서 회의를 해야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동안 쉬지 않고 해 온 조공이 있었기에 중복되지 않는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야 했다.
내가 살게 된 지역은 도자기로 유명한 지역이어서 나는 사극에 걸맞게 드라마 로고를 찍은 작은 술잔을 제작하자는 의견을 냈고 채택이 되었다.
업체를 찾아가 디자인 샘플들을 확인하고 견적을 뽑아서 가장 반응이 좋은 제품으로 제작하기로 했다.
수작업으로 제작되어 가마에서 구워내는 제품이었는데 처음 샘플로 제작된 걸 업체로부터 받아보니 너무 맘에 들었다.
그 외에도 배우에게 줄 물품과 스텝들에게 줄 구성품들을 정하고 포장 형태와 포장지를 정하고, 스티커나 카드 등등의 디자인도 해야 해서 회의할 게 너무 많았다.
그렇게 덕후들과 두 달을 준비해서 준비가 모두 끝나고, 촬영장으로 전달하게 될 날만 기다리면서 H집 베란다에 물품을 쌓아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촬영 스케줄과 조공 스케줄을 맞춰서 밥차, 커피차가 들어가야 하는데 업체들도 스텐바이 상태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준비를 시작한 지 네 달만에 현장으로 조공 물품이 전달될 수 있었다.
오프 스텝들이 촬영장에 가서 수고를 하고 돌아왔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스텝들과 공유하고 있었다.
배우가 조공을 받고 감사하다고 영상을 통해 인사를 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예상 밖의 이야기를 했다.
매우 조심스럽게 그동안 팬들이 조공한다고 고생하는 걸 지켜보면서 자신이 그걸 마냥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동안 받은 것도 너무 많았다며 앞으로는 조공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상 '조공 거부'를 선언한 것이었다.
조공을 통해 팬들의 응원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고, 배우와도 소통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함께 조공을 준비하면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과정이 행복했기에 덕후들은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배우가 부담을 느낀다면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게 맞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조공은 너무나 많은 비용과 덕후들의 땀과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다.
직접 스텝으로 참여해 보면서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었다.
아마도 이번 조공 과정 중 매니저와 조공 스케줄을 조절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많아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배우가 어렵게 내린 결정인 듯 싶었다.
배우는 팬들이 고생해서 물품을 다 준비해 놓고도 조공을 완료하지 못해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이 맘에 너무 걸렸던 것 같았다.
스텝들은 한편으로 서운해하면서도 한편으론 홀가분함을 느꼈다.
팬들이 조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응원을 전할 방법을 찾아가면 된다고 다들 생각했다.
나는 향수병으로 외로움을 크게 느끼던 때, 조공 스텝으로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힘들기도 했지만 덕후들과 조공을 하면서 서로 많이 가까워지고,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면서 행복감을 느꼈을 때가 더 많았었다.
나는 조공이 끝난 시점에 결혼 사실을 알렸다.
100개가 넘는 축하 댓글을 받았다.
다들 친구가 결혼한 것처럼 축하해 주고, 축복해 주었다.
어쨌든 배우가 조공을 금지시키면서 카페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말 상덕후에서 라이트한 덕후로의 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덕질의 다른 대상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내게 아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