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13

- 전환기

by 박드레

13년 가을에 연애를 시작했던 배우가 14년 봄에 결별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 사이 카페는 용광로처럼 들끓던 것들이 다 가라앉고 정화가 많이 되어 남은 덕후들끼리 오손도손 잘 끌어가고 있었다.

나는 14년 초에 아들을 낳아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육아는 내가 그동안 경험으로 체득해서 알게 된 그 모든 것들의 총합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너무나 작고 연약한 생명체가 엄마인 내게 의존하고 있었고, 그 생명체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자지도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아이를 케어하는데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육아가 너무 힘들 때마다 카페에 간간히 들어가서 덕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덕후들과 실없는 농담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다들 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도 배우가 더 단단해져서 멋진 모습으로 복귀하길 바랐다.

열일해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좋은 작품을 만나 선배들처럼 세계적인 무대에서도 인정받아 명실상부한 배우로 우뚝 서는 걸 보고 싶었다.

한국 영화계에 20대 여배우의 기근이 심했다.

30-40대 배우들의 뒤를 이어 영화계를 책임질 여배우가 절실히 필요했고, 우리 배우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도록 소식은 없었다.

덕후들에게 기다림은 이제 익숙했기에 다들 자신의 현생을 열심히 살면서 잘 버텨내고 있었다.

난 덕질의 모든 에너지를 아들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아들은 두 살이 되어 걷고 뛰었다.




아들이 세 살이 되었을 때, 배우가 복귀한다는 기사가 떴다.

일 년 전에 촬영한 영화도 개봉을 하고, 9월엔 새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다고 했다.

카페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배우의 연기 재개에 고동안 안 보였던 덕후들이 하나둘씩 돌아오고 있었다.

영화에서의 비중은 특별 출연 정도로 작았지만, 워낙 쟁쟁한 선후배들과 같이 연기를 해서 화제성이 높았다.

영화가 개봉을 하고 나도 영화를 관람했다.

사극 연기를 많이 한 사람이라 굉장히 사극에 잘 맞았고, 호평을 많이 받았다.

누적 관객수 600만을 거뜬히 넘겨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시사회, 무비토크 등이 개최되어 덕후들은 부지런히 오프를 뛰어다니고, 각종 보도 자료를 퍼 오느라 바빴다.

다시 덕질의 시동이 걸린 것이다.

아들 덕질에 바쁜 나는 예전처럼 활발한 활동은 하지 못하고 간간히 글을 쓰고 댓글을 달았다.



9월이 되어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 배우가 인스타를 시작했다.

드라마 홍보도 하고 팬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시작한 거 같았다.

물론 나도 덕질용 계정을 하나 더 팠다.

인스타를 시작하고 나서 배우는 매일 아침마다 출근길이라면서 셀카를 올려 주고, 촬영 중간 쉬는 동안의 소식도 전해주고, 퇴근했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엔 거리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도 많이 소개해 주었다.

하루에 10번 업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카페에 실시간으로 인스타 업데이트를 알려주는 덕후들이 있어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덕후들이 댓글로 몇 신 찍었을까, 밥은 먹었을까, 컨디션은 어떤가 등등 궁금한 사항을 댓글로 적으면 어느새 다 읽어 보고 해시태그로 일일이 답해 주기도 했다.

화보 사진이나 언론 보도 사진을 이용해서 덕후들이 장난스럽게 합성한 사진들을 카페에 올리고 하면, 그게 재미있는지 자기 인스타로 퍼가서 올리고, 더해 오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팬들이 감이 떨어졌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장난기 가득한 사진과 멘트를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해킹을 당했나 싶게 팬들을 향한 애정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떠나갔던 덕후들의 닉네임을 언급하기도 해서 인스타 글을 읽고 다시 돌아온 덕후도 있었다.

원래도 팬들에게 자상하고 친절했는데 공백기 이후 배우는 무슨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거침없이 팬들에게 다가왔다.



이번에 시작한 작품은 스릴러지만 작품성이 꽤나 있는 수작이었다.

공중파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소재와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였다.

시청률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배우의 작품 선택이 좋았고, 관리를 하고 나온 배우의 비주얼도 만족스러웠다.

모처럼 모든 것이 좋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 카페 분위기가 좋았고, 배우도 한껏 신나 있었다.

거기다 배우가 거의 실시간으로 덕후들과 소통을 해 주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갑자기 배우가

"제법 잘 어울리는 데 우리 사귈까?"

라고 인스타로 대시를 해서 덕후들이 '콜!' 했더니

그날부터 사귄 날짜를 카운트해서 해시태그 끝에 붙이기 시작했다.

팬들과 럽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아직도 배우는 인스타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잊지 않고 날짜를 넣어 주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열애와 공백기를 거치면서 배우가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항상 세간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겼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여러 일들을 같이 겪으면서 팬들에 대한 유대감과 믿음이 커졌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입덕해서 한창 덕질에 미쳐 있었던 초기보다

한 발 뒤로 물러나서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된, 5년 후의 지금이 더 좋았다.

이제는 정말 배우를 '내 배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에 대해 알만큼 알게 되었고, 덕질에 대해서도 뚜렷한 철학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5년이 덕질 인생에서 가장 잔잔하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던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아들 덕질과 배우 덕질을 균형 있게 잘 해내고 있었다.

물론 아들 덕질의 비중이 훠~얼씬 컸지만 말이다.



'내 아들'과 '내 배우'는 나의 영원한 덕질의 대상이 되리라 생각했다.

둘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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