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18
-라방 시작, 유튜브 채널 개설
2021년이 되어서도 배우는 쉼을 이어가고 있었다.
팬들은 배우의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배우도 이제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연예계도 예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화해 나갔다.
가수, 연기자, 예능인의 경계가 모두 허물어져서 아이돌 출신 가수들이 연기까지 겸업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연기자들은 연기만 하지 않았다.
모두 각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서 경쟁력을 키워 나갔고, 말 그대로 무한 경쟁의 체제로 돌입한 마당이었다.
그렇게 변화하는 동안 정통 연기자들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젊고, 인지도 있는 아이돌들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작품이 많았다.
요즘 아이돌들은 연기도 곧잘 했다.
그렇기에 팬들은 배우가 안주하고 있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해야 본인이 원하는 작품을 선택할 수 있기에 팬들은 마음이 급했다.
삼십 대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해야 사십 대에 안정적으로 연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팬들의 판단이 맞았고, 휴식기가 길어질수록 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배우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마냥 느긋해 보였다.
어느 날, 배우가 인스타 라방을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팬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고,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편하게 전하고 싶어서 시작했을 것이다.
자주 라방을 하면서,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 힘든 이야기들도 나누고 각자 삶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라방에 참여한 팬들끼리 서로 위로도 해주고, 좋은 일엔 축하도 해 주고, 웃긴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바쁠 땐 참여를 못할 때도 있었지만, 라방 시작 알람이 뜨면 들어가 있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배우와 덕후들과 그렇게 도란도란 수다를 나누는 것이 좋아서였다.
배우는 덕후들을 거의 다 알아서 익숙한 사람들이 안 보이면 서운해하기도 하고, 들어오는 것이 보이면 엄청 반가워하기도 하고 그랬다.
엄마집에서 라방에 들어가서 엄마가 자꾸 뭐 하냐고 물어본다고 댓글을 달았더니, 갑자기 "어머니, 000이에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기도 해서 엄마가 어리둥절해하신 적도 있었다.
그렇게 라방과 인스타로 팬들에게 서비스를 많이 해 주고 있었지만, 여전히 팬들은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컸다.
라방에서 본인이 연기를 너무 짝사랑하는 것 같다고 울컥하기도 하고, 해 보고 싶은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 팬들은 어서 복귀하기를 바랐다.
그러던 그녀가 무슨 준비를 하는지 자꾸만 뭔가 비밀스러운 작업의 흔적을 흘리고 있었다.
덕후들이 뭔지 너무 궁금해하자 조금만 기다리라고 준비가 다 끝나면, 오픈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배우가 준비했던 일의 베일이 벗겨졌다.
그것은 유튜브 채널 개설이었다.
그 채널은 배우가 연출한 작품을 공개하는 채널이었다.
배우는 자신이 디렉팅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남이 써 준 대본으로 남이 원하는 연기만을 해 오다 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방식으로 창작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기획하고 준비해 왔다고 밝혔다.
배우들이 연출에 참여한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배우는 모든 콘티를 직접 쓰고, 촬영 팀을 섭외하고 자신이 연출을 맡아 세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한 편은 자신의 이야기, 다른 두 편은 각각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이야기였다.
대사 없이 진행된 무언극 형태의 영화였다.
첫 작품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고, 나는 기대를 가지고 감상을 했다.
9분 분량의 짧은 영화였고, 수중에서 배우가 직접 연기를 한 작품이었다.
편집된 9분의 영상을 얻기 위해서 배우는 거의 하루 종일 물속에서 연기를 해야 했을 것이다.
물속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수중에서 호흡을 유지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 촬영 자체가 매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로지 수중에서 배우의 몸짓과 표정만으로 표현된 영화였는데, 나는 신기하게도 배우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배우는 자신의 20년 연예계 생활을, 출구가 없는 깊은 물속에 갇힌 걸로 묘사했다.
처음엔 그곳이 좋아서 마냥 유영하며 좋아하다가 수면 위에 빛이 비치면서 출구가 나타나 그곳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출구는 사라진다.
또다시 출구가 보여서 그곳으로 헤엄쳐 다가가면 출구는 또 어느새 사라지게 된다.
결국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그곳에서 나름의 일상을 찾기 위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구르기도 하고 그렇게 출구 없는 삶에 적응을 해 나간다.
아무도 없이 그렇게 물속에 갇혀 지내는 삶에 환멸을 느끼다가 문득 자신의 입에서 물방울이 생겨 물 위로 솟구치는 걸 발견하고는 그 물방울과 같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사라지는 존재가 되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된다.
그 짧은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연예계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단지 연기가 하고 싶어 연기를 시작했던 소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봐 주는 스타가 됐고, 그게 어떤 무게와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도 모른 채 대중들이 원하는 이미지에 갇혀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이미 고착화돼서 쉽지 않았다.
많은 물질적 부를 얻는 대신, 평범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은 모두 포기하며 살아야 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배우의 연기를 통해 느끼게 되니 너무 실감 나게 와닿았다.
평범한 삶을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거의 다 하면서 살았던 나 같은 사람은, 배우의 삶이 감정적으로 이해되고 않고 배부른 자의 투정으로 느껴졌는데,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누구나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는 배우가 왜 채널을 개설했는지를 이해했다.
나머지 두 편도 배우들이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자신의 연기로 꺼내 놓은 작품이었고, 그걸 표현해 내는 창구로 채널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영화에 대한 감상을 카페에 썼고, 배우는 감동을 받았다고 댓글을 썼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배우가 연기를 하든 안 하든 배우의 모든 삶을 응원할 거라 속으로 다짐했다.
덕후들이 배우의 행보에 불만을 표현하며 본업에 충실해 달라고 요구하는 글을 쓰면, 연출도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되는 작업이고 자신의 창작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연기도 열심히 할 테니 지켜보자고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태도를 덕후들은 싫어하기 시작했다.
덕후들은 십 년 넘게 함께 덕질을 해 왔지만, 자신의 생각과 달리 배우의 연출 작업을 옹호하며 연기 활동을 재촉하지 않는 나의 입장을 불편해했다.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카페에 글이나 댓글을 달 때마다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 또한 덕후들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우에게 이 과정이 필요한 거라면 수용해 주고 지지해 주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마다 비추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배우 얘기가 아닌 글에도 무조건 비추가 달리는 것을 보고 ' 아하! 내가 그냥 싫은 거구나!'를 느끼기 시작했다.
배우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카페에 대한 애정도 컸었다.
그렇기에 십 년 넘게 한 공간을 지키고 있었는데, 짙은 회의감이 몰려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