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되고, 여전히 배우는 연기 활동을 쉬고 있었다.
여전히 라방이나 인스타 활동은 활발히 하고 있었고, 가끔씩 심심하면 카페로 들어와 글을 정독하며 댓들을 달아 놓기도 했다.
어느 날에 내가 나희덕 시인의 <방을 얻다>라는 시를 소개하며 이런 글을 써 놓았다.
방을 얻다 / 나희덕
담양이나 평창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서 일할 공간이 필요해서요
나는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켰고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글씨,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라제마는 우리 이씨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세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00는 알고 있을까
따스한 눈빛 속에 슬픔이 깃들어 있는 맑은 눈에 이끌려서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우리가 이미 세 들어 산지 십 년이 넘었다는 것을
세도 안 내고 살아서 미안하다
근데 이미 마음으로 일천구백칠십만원이상 너한테 지불하고 있었는데
이제 필요 없다고 방 빼라고 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오십 년쯤 세를 얻고 싶은데
허락하실란지?
근데 허락 따위 필요 없다
빌려줄 방이 없다 해도 마음 바깥에 옥상이라도 올리고 붙어 있을랑께
그런데 글 아래 댓글로 배우가 이런 화답시를 써 놓았다.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에 세를 살더니
이렇다 할 자격도 없는 나에게 허락을 구하고
장구도 없이 장구채만 쥐어주는구나.
다만,
언제든 어디든 어떻게든 살아도 좋으니
그대의 마음 따라
세를 살아도 좋고 또 훌쩍 떠나도 괜찮소.
이래도 저래도 나는 영영 그대의 평안을 빌겠소
덕후들과 나는 이 시를 보고, 장구채만 쥐어 준다는 구절과 훌쩍 떠나도 좋다는 구절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나중에 이런 해석을 써 주었다.
내가 방 빼라고 해도 안 뺄거고
내가 방 빼지 말라고 해도 뺄거고
나는 그저 있을 뿐 모든 선택은 님들의 마음이지
계속 있어주면 고마운 거고
떠나간다면 마음은 아프지만, 있어줬던 시간에 감사할거고
쿨한게 아니라 덤덤해야지
그조차도 좋은 추억으로 남겨야지 다짐하는거고
사람일은 장담할 수 없기에.. 마음은 더더욱.
그럼에도 오랫동안 지지고 볶으며 살면 좋겠는게 진심이고.
///ㅁ///
이런 배우의 솔직한 마음을 알고 나서 난 서글퍼졌다.
그동안 많은 팬들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열열히 아껴주다가도 자신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접하면 실망하고 떠났다.
십덕이 돌아서면 안티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종잇장만큼 가볍기 그지 없다.
배우는 경험으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초연한 마음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언제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기에 장담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나는 항상 단기간에 어떤 판단을 내리거나 사람을 평가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사는 사람이었고, 한 번 준 마음을 다시 걷어 오는 게 힘들어서 쭉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속했다.
언제 내 마음이 변해서 돌아설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마음은 배우가 중년을 넘어 노년의 연기자가 될 때까지 내가 팬으로 남아서 지켜봐 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팬으로서 나의 이상이었다.
이게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배우가 배우로서 남아 주어야 했다.
나도 한때는 내배우가 예전처럼 잘나가길 바랐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대박이 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봐주고, 유명한 감독들의 러브콜도 받고, 국제 무대에도 진출해서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런 배우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것들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절대적 요소가 아님을 알았다.
남들이 평가하는 시선이 아닌, 내 자신의 내면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시간이 가르쳐줬다.
나는 내배우가 '행복한 배우'가 되길 바란다.
연기하는 게 너무나 행복하고, 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을 완성해 가는 멋진 배우가 됐음 좋겠다.
또, 세상의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유연한 개인의 삶을 살아가길 응원한다.
그런 삶을 바라보고 응원하는 덕후가 되고 싶다.
그게 나의 덕후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난 그렇게 배우를 지켜보고, 배우는 또 곁을 지키는 나를 지켜보면서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관계가 되길 소망해 본다.
하지만, 이것 또한 큰 욕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