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역사 20

-영화제 초청, 사인을 받다!

by 박드레

배우가 연출한 영화가 각종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

나는 축하도 해주고, 배우의 이야기도 들을 겸 해서 수도권의 영화제 GV에 참석했다.

극장에 들어가 스크린을 통해 배우의 영화를 다시 한번 감상했다.

두 번째 영화의 주연 배우와 함께 감독 자격으로 참석한 배우를 만날 수 있었다.

사회는 배우가 주연으로 연기했던 독립 영화 감독님이 맡으셨다.

1시간 여에 걸쳐 영화의 제작 동기와 창작 의도 등을 설명하고, 관객들의 즉흥적인 질문에 답이 오가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대화가 다 끝나고, 나는 준비한 꽃다발을 전해 주러 무대 쪽으로 내려가 대기했다.

선물과 꽃 등을 준비해 온 팬들이 많았다.

꽃다발을 전해 주면서 "감독 데뷔를 축하합니다"라고 하니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돌아왔다.

나중에 카페에 들어가 보니, 행사가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배우를 만나 사인을 받았다는 덕후가 몇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온, 오프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나는 배우에게 직접 받은 사인이 없었다.

그럴 기회가 없었고, 언젠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사인에 욕심내지 않았다.

근데 왠지 글을 보자 나도 사인을 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멀지 않은 도시에서 개최되는 영화제에 배우의 작품이 또다시 초청되었단 소식을 접했다.

나도 이번엔 기회가 되면, 사인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집을 챙겼다.

지난 GV때, 가까운 좌석표를 양도해 준 덕후와 또 다른 덕후와 셋이서 만나 밥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



GV가 끝나고 나는 덕후들을 만나 같이 배우의 퇴근길을 배웅하기로 했다.

배우는 매니저와 함께 커피숍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나가더니 옷을 갈아입고 다시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우리를 지나쳐 가는 배우에게 인사를 하니 배우가 살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우리는 커피숖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배우는 칸막이가 있는 자리에서 인터뷰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의 자리에서 배우가 앉아 있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우리도 자리에 앉아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수다를 시작했다.

한 사람은 지난번에 인사를 나눈 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카페가 생겼을 초창기부터 활동을 해왔지만 나처럼 다수가 참여하는 활동은 안 하는 사람이라 얼굴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 덕후는 나와 동갑이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내 사주를 물어봐서 왜 그런가 했더니 주역을 공부했다고 했다.

내 사주는 어떠냐고 장난삼아 물어봤더니 좋은 것만 말해 주었다.

재미있고 특이하면서 따뜻한 사람이었다.

내게 표를 양도해 준 덕후는 그야말로 상덕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정확히 딱 맞았다.

그 덕후는 사진과 영상도 잘 찍었고, 배우의 행사는 빠짐없이 참석하기로 유명했다.

배우가 얼굴을 알 정도로 서로 많이 본 사이였다.

상덕후가 자신도 오늘 사인을 받으려고 준비를 해 왔다면서 매니저가 지나갈 때, 사인을 해 줄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살짝 물어보겠다고 했다.

조금 있다가 매니저가 우리 쪽으로 지나가려고 해서 혹시 배우한테 사인을 해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줄 수 있냐고 했다.

배우가 인터뷰 중간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 해준다고 했다고 매니저가 전해 주었다.

매니저가 우리에게 와서 사인을 받을 종이와 내용을 메모해서 가지고 갔다.

잠시 뒤, 나는 배우가 사인한 시집을 돌려받았다.

배우는 내 닉 옆에 하트도 그려 주었다.

그게 뭐라고 되게 뿌듯했다.

덕질 십 이년만에 자필 사인을 한 장 받으니 이걸로 그동안의 덕질을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동갑인 덕후는 배우가 처음 공연했던 연극 대본을 구입해서 십 년 동안 차에 싣고 다녔다고 했다.

같은 서울에 사니, 언젠가 우연히 촬영하는 걸 보게 되거나 마주치게 되면 사인을 받으려고 매일 차에 넣고 다녔어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받았다고 좋아했다.

상덕후도 며칠 후 자신의 생일인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넣어 실명으로 사인을 받았다고 좋아했다.

이게 뭐라고 좋아하는 덕후들을 보면서 이심전심을 느꼈다.

머글들은 죽었다 깨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덕후들과 빵과 커피로 배를 채우고 한참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배우는 인터뷰가 끝나지 않았는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끝이 났는지 반대쪽 문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우리는 셋이 일어나서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배우는 바빠 보였다.

나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두 덕후는 배우가 차에 타고 퇴근을 할 때까지 남아 있겠다고 했다.

상덕후가 자신은 배우가 퇴근을 하기 전까지 먼저 집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까지 하는지 같은 덕후로서도 이해는 되지 않았다.

두 덕후와 인사를 하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카페를 떠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카페는 나의 놀이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배우를 떠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난 떠날 생각이 없다.

다만, 덕질의 방향과 방식을 달리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카페를 떠났다.

그리고 벌써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카페를 떠난 건, 비단 서운한 마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내겐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건 배우를 만나 인사를 하고 사인을 받았던 날, 배우에게 건넨 편지에 쓰여 있었다.

난 꿈을 이루기 위해 카페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난 휴덕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난 휴덕기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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