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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Jul 06. 2023

고통을 대하는 자세

14년 전에 나는 사랑하는 친구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냈다.

처음엔 그 상황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친구의 상을 치르고 49까지 참석하고 나서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되었다.

낮에 정신이 맑지 못하니 일에서도 실수가 생겼고, 모든 것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취하면 잠이 들까 해서 술을 마셔도 잠깐 골아떨어지다 다시 깨기 일쑤였고, 운동을 하면 피곤해서 잠이 쏟아질까 싶어 낮에 운동을 열심히 해도 몸은 엄청 피곤한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수면 유도제를 복용해도 깊은 잠을 자긴 어려웠다.

불면증에 좋다는 것은 다 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쯤, 김연수 작가님이 <산책하는 사람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라는 소설로 이상문학상을 받아 그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도 나처럼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주인공이 자려고 하면 코끼리가 나타나 발을 들어 주인공의 가슴을 짓누르는 환상이 시작되고 극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사고로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다.

영화감독이었던 주인공은 인터뷰를 했던 암환자가 산책으로 암을 극복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리스트를 만들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과 저녁 산책을 시작한다.

그들과 산책을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지만, 친구들은  실제 외적 압박이 가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느끼는 신체의 극심한 통증 이해하지 못한다.

심리적인 문제이니 병원에 가서 약을 타서 먹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힘들겠다'는 것이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보편적인 자세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겪지 못한 일에 대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소설을 읽고 나는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출판사에 문의하니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메일로 두서없이 내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나의 고통을 이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친해진 이야기, 같이 놀았던 이야기, 친구는 대학을 떨어지고 나만 붙어서 미안했던 이야기, 대학을 다니면서 조금 멀어지게 된 이야기,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된 이야기 등등 친구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썼다.

그러다가 내 이야기로 바뀌게 돼서 어렸을 때 형제는 많았어도 외로웠던 이야기, 언제나 바빴던 부모님과 함께한 추억이 없다는 이야기, 외할머니가 몸이 약한 나를 업어서 키우다 등이 굽으셨다는 이야기, 사춘기가 좀 길었단 이야기 등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한테는 가깝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불면증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고통의 원인이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을 때 나의 고통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잠은 못 자고 있었지만, 그래도 죽을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보내주고 있는 메일이 수신확인으로 뜨는 걸 보니 작가님은 내 긴 글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누구나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고통과 만나게 되고 힘들어질 수 있다고,

다만 그럴 때 나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나를 내가 이해하고 위로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기에 이 모든 것이 내게 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겨낼 힘이 생기게 될 거라고.

모든 것은 우리에게 지나가는 과정이 될 거라고, 언젠가 이 순간을 기억하며 웃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러니 힘을 내라고, 보내 주고 있는 글들은 자신이 잘 읽고 있다고.

그런 내용으로 작가님은 답신을 보내 주셨다.

사실 답장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냥 주저리주저리 술주정하듯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는데 조금 놀랐다.

작가님의 따뜻한 위로의 글을 읽고 나서 너무 고마웠다.

참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도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했는데 더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분이시니 좋은 글을 쓰게 되는 거구나 생각했다.

지금도 작가님의 신간이 나올 때면 반가움이 가득해져서 꼭 읽게 된다.



그 힘들었던 시기가 다 지나가고 작가님의 말대로 이제는 웃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시련과 고통이 간간히 "날 잊진 않았지?" 하면서 나를 찾아온다.

그래도 나는 이제 내 고통을 타인이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날 다독이고 위로하면서 잘 견딜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불면의 밤이 찾아오더라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내가 겪어내야 하고 나만이 그 과정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너무 힘들면 그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제법 세련되고 어른스럽게 위로할 줄 아는 친구 몇 명이 곁에 있으니까.

고통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기에, 그 고통에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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