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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Jun 27. 2023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가 아니라 '작가가 될 것 같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제법 타기도 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나에게 "넌 글을 잘 쓰니 작가가 되겠네."라고 말을 했다.

딱히 무언가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 말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대학도 국어국문과를 갔다.

내게 국어가 가장 쉬웠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들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한 번 쓰고 나면 잘 고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쓱 쓰고서 완벽하게 써졌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맘에 안 드는 부분을 다른 말로 대체해서 고쳐 놓으면 항상 원래의 표현이 더 좋다고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문맥에 안 맞거나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표현,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만 다시 고치곤 했다.

글 쓰는 잔재주로 제법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았다.

작문 수업 과제를 할 때 친구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면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을 때도 있었고, 친구들한테 진솔하고 감동적인 편지를 써서 호감을 얻기도 했다.

친구들이 러브레터를 쓸 때 도움을 요청해 도와주고 사귀게 돼서 선물을 받았을 때도 있었고, 친구 청첩장에 들어갈 문구를 써 달라고 해서 써 주고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작가로서 내가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막연하게 '작가나 돼 볼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는 현실을 모르는 애송이였을 뿐이었다.


대학 3학년 때, 서울예전 문창과를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편입을 해 온 김*경이라는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런 생각을 지니고 살고 있었다.

<수필론> 수업에서 각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써 온 수필이나 단편 소설을 함께 읽으면서 작가의 창작 의도나 표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썼다.

졸업도 하기 전, 식을 올린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썼었다.

비교적 나쁘지 않은 글이었다.

그리고 나서 김*경 친구가 과제로 제출한 소설을 읽게 되었다.

두 명의 여자가 배를 타고 섬을 여행하는 하루의 여정을 소설로 쓴 것이었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갈등이나 긴장이 있지도 않은 그 짧은 소설을 읽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담담히 두 여자의 내면을 세밀하게 담아내는 이야기였는데, 모든 게 완벽한 한 편의 작품이었다.

내가 쓴 글은 어린아이의 학예회 발표 정도의 것이었고, 그 친구의 글은 어른의 글이었다.

내가 쓴 글이 마이쮸라면, 그 친구의 글은 진한 다크초콜릿이었다.

그때부터 그 친구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알고 싶었다.

고작 스물셋이 그런 깊은 글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친해지고 나서 자연스럽게 그 친구가 문학에 대해 지니고 있는 순수한 열정과 노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친구는 문학을 정말 사랑하고 있었고 진지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자기가 쓴 글을 수십 번도 넘게 고쳐 쓴다고 했다.

가장 행복한 때는 매년 1월 1일 새벽,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대문 밖으로 나가 배달된 신문을 들고 들어와 잉크 냄새가 가득 배인 것 같은 검은 글씨로 인쇄된, 신춘문예 등단 작가의 글을 읽는 그 시간이라고 했다.

자기는 세상에 처음 나온 그 글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환희와 감동이 너무 좋아서 작가가 되기로 했다고, 언젠가 자신의 글도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될 날을 위해 매일 글을 읽고 매일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는 친구의 반짝거리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짙은 패배감을 느꼈다.

나에겐 그런 열정도, 순수함도 없었다.

나는 그때, 부끄러움과 동시에 친구한테 질투를 느꼈었다.

그때부터 나는 '작가나 되어 볼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에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된다면, 저렇게 확고하고 뚜렷한 의지를 지니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자신을 갈고닦는 내 친구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와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글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구의 이름이 신춘문예에 등장하길 기다려왔다.

필명으로 등단해서 내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친구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친구가 글 쓰기를 그만뒀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친구의 등단을 기다리게 된다.

그 친구의 문학에 대한 그 아름다운 고백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나는 이제야 비로소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아직도 너무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되기 위해서 꼭 어떤 자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걸 쓰고, 표현하고 싶은 게 있음 가슴속에 묻어 두지 말고 꺼내 놓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면 된다.

글은 내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일 뿐이다.

발이 없어 어디에도 날아가지 못해서 죽어 가는 내 마음의 조각들에 날개를 달아 훨훨 날아가게 하는 작업이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러면, 그 날아다니는 마음을 보고 사람들이 '내 마음도 저렇구나.' 하면서 공감을 하고 자기의 마음도 꺼내 놓게 된다.

나는 이제서야 정말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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