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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Jun 19. 2023

알콜홀릭은 애인있음 안 되나요?

한 달에 한 번씩 어르신들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재가 보호 센터에서 서비스를 받고 계신 어르신들 집을 방문해서 머리를 잘라 드리고 있다.

보통은 두 세분을 담당하는데 이번달엔 네 분이 미용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하셨다.

대부분 치매가 있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셔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케어를 하고 계신다.

방문할 때엔 나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동행을 한다.

사회복지사는 내가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요양보호사와 어르신에 대해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 어르신들의 건상태나 필요한 것들을 확인한다.

보통 20-30분 정도가 소요되는 시간에 어르신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신다.

혼자 살고 계신 분들은 사람의 방문 자체가 반가우니까 자신의 신상 얘기며, 취미 얘기, 건강 얘기 등을 끊임없이 하신다.

나는 머리를 자르면서 듣는 그 얘기들에 적절한 반응을 해 드리려 노력한다.

"진짜요? 많이 아프셨겠네?"

"그림을 그리신다고요? 이따 보여 줘요."

"병원 다니는 거 힘드시겠네."

"어떻게 자르라고요? 아니야. 여름이라서 짧은 게 더 나아요. 알아서 해 드릴게."

미용실 아줌마가 손님을 상대하는 것처럼 스스럼없게 대해 드려야 어르신들이 좋아하신다.

어르신들은 어디에서 미용실 하냐? 돈은 안 받냐? 고 묻기도 한다.

봉사활동이라고 돈은 안 받는다고 매번 말씀을 드려도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곤 하신다.

미용이 끝나면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붙드시는데 음식을 먹거나 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고, 다음 스케줄이 잡혀 있기에 정중히 거절하고 나온다.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남자 어르신이 있다.

알콜중독이라 시설에 들어가 있다가 상태가 조금 나아져 집으로 돌아온 분이라 했다.

센터장님과 복지사선생님과 같이 방문을 했는데 센터장님이 가는 동안 나에게 여러 가지를 일러 주셨다.

우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상한 소리를 하나 울기도 한다고 했다.

아이처럼 칭얼대기도 하고 머리를 안 자르겠다고 거부를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있으니 돌발적인 행동을 컨트롤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요양보호사는 안 계셨고 어르신 혼자 계셨다.

화장실에서 화장실이 더러워 청소를 했는데 물이 안 빠진다며 안 나오셨다.

사회복지사가 괜찮다고 일단 나오시라고 해서 나오셨는데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으셨다.

몸은 너무 말랐고 머리숱이 엄청 많은 분이셨다.

그래도 미용사가 와서 머리를 잘라 드린다고 해서 머리를 감으셨다고 했다.

계속 말을 하셔서 일단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커트 준비를 했다.

숱이 많고 엄청 뻗치는 머리였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했더니 짧게 자르지 말라고 하셨다.

적당한 길이로 커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쉴 새 없이 말씀을 쏟아내셨다.

방안 가득 어질러져 있는 책상 아래 뒹굴고 있는 막걸리 병이 여러 개였다.

밥은 안 드시고 술만 드시나 생각이 들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밥을 잘 먹고 술은 제발 줄이라고 간곡하게 얘기했다.

그런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이고 오로지 자신에게 돈이 더 필요하단 말씀만 하셨다.

또, 자신의 요양보호사가 맘에 안 든다며 교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커트를 다 하고 나서 정리를 하다가 빨래 건조대를 보았는데 여자 팬티가 걸려 있었다.

복지사 선생님도 그걸 보고 있었다.

그때 센터장님은 다른 어르신에게 물품을 전달하기 위해 그곳에 없었는데 센터장님을 찾으며 엄마는 언제 오냐고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사회복지사가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나에게 차에 있으라고 하셨다.

센터장님도 도착해서 어르신 방에 들어가 셋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복지사선생님이 건조대에 여자 팬티가 걸려 있는 걸 봤냐면서 아저씨를 찾아오는 여자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센터장님도 그래서 아저씨 통장에서 돈이 계속 빠지고 있는 거구나 하셨다.

매달 돈이 들어오는 날짜에 맞춰 다음 날부터 돈이 몇 십만 원에서 몇 만씩 인출되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돈이 떨어지면 정부에서 제공된 쌀을 요양보호사한테 팔아다 달라고도 한다고 했다.

매번 센터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돈을 더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고 하셨다.

아저씨가 증상이 심해져서 기관에 입원하게 되면 돈이 안 빠지고 그대로 있는 걸 보니까 퇴원하면 여자가 아저씨 집으로 와서 통장에서 돈을 빼서 쓰고 있는 거 같다고 하셨다.

저렇게 숟가락 들 힘 하나 없어 보이는 남자에게도 여자가 붙어 있는 건 아저씨 통장에 들어오는 지원금 때문인 거 같다고 염려를 하셨다.

하지만 센터에서도 사생활까지는 간섭할 수 없는 거였다.

알콜중독자도 애인을 만들 수는 있고, 그 애인이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아저씨한테 붙어 있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사람에겐 어떤 형태의 만남이든 위안이 될 수 있는 법이니까.

그저 그 아저씨가 술을 끊기까진 못하더라도 술을 줄이고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이발을 해 드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삶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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