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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드레 Dec 01. 2023

너에게 닿기를


너에게로 가려고 

나는 강을 만들었다.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물소리는 흰 새떼를 날려보냈고

흰 새떼는 눈발을 몰고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로 가려고


                                                         - 안도현, 강



어제 친구와 통화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온 사이라 각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바삭한 관계이다.

친구의 엄마가 치매를 앓고 계신다.

얼마 전부터 증세가 심해져 혼자 계실 수가 없어서 충주에 있는 언니가 집으로 모셔가 돌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이후부터 치매가 시작되었다.

친구는 직장에 다니고 있어 자주 찾아가 뵙진 못하는데, 주말에 충주로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다 온다고 했다.

친구 언니는 엄마를 돌보겠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딸도 못 알아보고, 밤낮으로 잠도 안 자면서 옆에 있는 사람까지 잠을 못 자게 하고 밤에도 수시로 돌아다니고 하신다고 했다.

그러니 돌보고 있는 언니가 너무 지치고 피폐해져만 간다고 했다.

그나마 막내딸인 내 친구는 알아본다고 했다.

어머니가 늦은 나이에 낳은 딸이다 보니 애정이 각별하셨나 보다.

자식들은 이제 요양병원을 알아봐야 하는 단계로 접어든 어머니의 상태로 인해 적잖게 심란해하고 있었다.

내 친구도 엄마 걱정과 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주위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 두 부모님이 건강하셔서 아직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언제고 나한테도 닥칠 일이고, 머지않아 우리 본인의 문제가 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찾아 올 질병이지만 겪는 가족들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이 갑자기 백치가 되어 사리분별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친구의 어머니는 총기 있는 분이셨고, 대장부 스타일이셨다.

친구의 아빠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실 때 자식들을 돌보고 집안을 무탈하게 이끌어 가셨던 분이었다.

친구의 고향 근처로 우리 가족이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나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댁을 방문하니 내 손을 잡으시며 어릴 때 모습 그대로라고 어느새 결혼해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냐며 너무 기뻐하셨다.

근처로 오게 되면 꼭 한 번씩 엄마 얼굴 보러 들르라며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을 차려주셨었다.

그랬던 그분이 치매에 걸리셨다니 내 마음도 많이 아프다.

친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병원은 어디로 보내야 할지, 병원에서 엄마가 적응을 하실 수는 있을지 또, 병원에서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시는 않을지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도 안 온다고 했다.

당연하다.

나라도 너무 마음이 복잡하고 착잡할 것 같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를 위로해 주고 언니 부담을 줄여 줄 방법은 요양원에 모시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가족 요양은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물론 부모를 끝까지 모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치매 노인을 간병한다는 것은 멀쩡한 사람도 정신이 나가게 하는 일이다.

나는 미용 봉사를 다니며 치매 어르신을 매달 만나고 있다.

치매여도 어르신들의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어떤 분은 정말 해맑게 웃으시며 언제나 처음처럼 나를 반기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앉아 계시기도 힘들 만큼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쉴 새 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런 분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대부분 어르신들을 막대하지 않는다.

물론, 안 보이는 곳에선 어떻게 대하는 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뉴스에서 요양원에서 학대가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서 요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들 때도 많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렇지 않은 곳도 많다.

노인 인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요양원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세대는 모두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마음이 아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친구와 요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이 땅을 떠나는 그날까지 내 집에서 거주하다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면 건강 관리와 식이에 신경 써야 한다.

유전적인 요소가 가장 큰 변수이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할 것이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내 마음도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닿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물리적인 한계든 정신적인 한계든 그 어떤 장벽이든 그것을 뛰어넘어 그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 사람에게 나 여기에 있다고 알아봐 달라고 말하는데 그게 안 된다면, 얼마나 절망적인가.

그래도 아직은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언젠간 그것도 못할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나에게도 곧 닥칠 일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모님이 내 곁을 떠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게 되는 일.

머리로는 받아들여지지만, 가슴으론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일.

결코 그것은 연습이 되지 않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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